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위와 돈 문제로 다투다 흉기로 사위를 찔러 살해한 50대 중국인이 징역 12년형을 확정받았다.
피고인은 사위가 먼저 흉기를 집어 들어 방어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정당방위 혹은 과잉방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최모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5년간 보호관찰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피고인에 대해 징역 12년을 선고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2015년 2월경부터 국내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근무하며 생계를 유지해 오던 최씨는 2019년 8월부터 자신의 딸과 역시 중국 국적의 사위 A씨(사망 당시 35세)와 함께 살았다.
2019년 10월 최씨의 딸과 혼인신고를 마친 A씨는 최씨가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는 것에 평소 불만을 품고 있었고, 최씨는 A씨가 자신의 딸을 폭행하는 등 가정폭력을 행사한 것 때문에 사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A씨는 최씨의 딸과 함께 2020년 7월 21일 출국해 중국에서 거주하다가 지난해 8월 15일 다시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입국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8월 21일 오전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최씨의 집으로 찾아온 A씨는 ‘제가 예전에 돈을 드린 적도 있으니, 저에게 돈을 좀 달라’는 취지로 얘기했지만 최씨는 거절했고, 같은 날 오후 11시쯤 A씨는 다시 최씨의 집을 찾아가 7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최씨는 ‘중국에 있는 아들에게 수확기를 사줘야 해서 돈을 줄 수 없다’며 재차 거절했다.
화가 난 A씨는 ‘아들이 사람 구실도 못하는데 왜 수확기를 사주냐’는 취지로 말하며 최씨에게 욕을 했고, A씨와 몸싸움까지 하며 다투던 최씨는 과도로 A씨의 가슴을 찔러 살해했다.
범행 후 조부모 산소가 있는 포항까지 도주했던 최씨는 이후 수사기관의 연락을 받고 도주를 포기하고 신병 확보에 협조했다. 검찰은 살인 혐의로 최씨를 재판에 넘겼다.
최씨는 재판에서 “사위가 칼을 집어 들길래 손목 부위를 양손으로 잡아 칼을 빼앗으려 한 사실 외에는 기억나는 바가 없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즉 자신은 살해의 고의를 갖고 사위를 찌른 사실이 없으며, 설사 찔렀다고 해도 사위의 부당한 공격에 대한 정당방위 내지 방위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부당한 법익 침해에 대한 상당성 있는 방위행위라고 보기 어렵고, 설령 피고인이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하는 피해자로부터 칼을 뺏어 피해자를 찔렀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어 과잉방위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맞붙어 싸움을 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통상 공격행위와 방어행위가 연달아 행해지고 방어행위가 동시에 공격행위인 양면적 성격을 띠는 것이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느 한쪽 당사자의 행위만을 가려내어 방어를 위한 정당행위라거나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라며 일반적인 경우 싸움 과정에서 일방 당사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다만 몸싸움 도중 어느 일방이 갑자기 흉기를 꺼내 들거나 하는 등 경우 예외적으로 정당방위 성립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 사안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씨가 A씨로부터 칼을 빼앗기 위해 실랑이를 벌였다면 칼날에 손이 베거나 칼에 찔리면서도 이를 손으로 밀어내는 등의 방어행위를 한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최씨의 몸에는 방어흔이 없었던 반면, A씨의 왼손바닥에는 길이 약 0.7cm의 칼에 벤 손상(방어흔)이 발견된 점 ▲범행에 사용된 칼의 칼날과 손잡이에서 A씨의 혈흔이 발견됐고, 최씨가 체포될 당시 착용한 점퍼의 팔 소매, 티셔츠 겨드랑이 부근, 바지 종아리 부위, 양말 발목 부위에서 A씨의 혈흔이 검출된 점 ▲최씨의 주장처럼 A씨가 칼에 찔렸는지 또는 사망했는지 여부를 알지 못했다면 최씨가 오후 11시가 넘어 집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고 동네를 배회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이후 다시 집에서 나와 택시를 갈아타고 포항까지 가는 이례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범행에 사용된 칼은 행거 받침대 아래 부근에 바지에 덮힌 채 놓여있었는데, 최씨는 ‘칼은 원래부터 행거 아래에 뒀다’고 얘기하지만 이와 달리 최씨가 범행 이후 칼을 숨겨두고 도주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최씨의 주장을 배척했다.
또 재판부는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최씨의 유전자(DNA)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최씨가 칼을 손으로 만졌을 때보다 칼에 찔린 A씨의 혈흔이 묻은 경우의 DNA 농도가 짙기 때문에 최씨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결국 1심 법원은 최씨에게 살인죄 유죄를 인정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형의 집행종료일로부터 5년간 보호관찰을 받을 것도 명했다.
최씨의 딸과 A씨의 모친 등 유족들이 최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돈 문제로 언쟁을 벌이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점, 최씨가 도주 의사를 단념하고 수사기관의 신병 확보에 자발적으로 응한 점, 국내 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이 유리한 양형 사유로 참작됐다.
최씨와 검사 양측 모두 항소했지만 2심의 결론도 같았다. 대법원 역시 최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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