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신뢰예요”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의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사기 의혹이 불거져 경찰에 체포된 전청조의 독특한 말투가 이른바 ‘밈’(meme)이 됐다. 재미있고, 반복하기 쉬운 밈의 속성상 ‘전청조 밈’도 일반 대중, 예능을 넘어 ‘I am 특가에요. Next time은 없어요’(위메프) ‘2분기 연속 흑자 I am 기대해요’(유진투자증권) ‘I am 충주예요. Next time에 기부할게요“(충주시 유튜브) 등 유통가와 공기업의 홍보 문구로까지 확산됐다.
이를 두고 “피해자가 있는데 전청조 밈이 유행하는 건 분명한 문제”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또 다른 쪽에선 밈의 특성상 너무 엄격한 잣대를 대는 건 무리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밈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유머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집단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밈은 흙속에서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했던 진주를 발굴해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가수 비는 밈의 유행으로 제2의 전성기까지 맞았다. 2000년대 초 월드스타 칭호를 얻었던 비는 실패한 노래로 꼽히던 ’깡‘의 유치한 가사와 안무 등을 풍자한 ’1인1깡‘ 밈을 통해 방송가, 광고계의 러브콜을 받는 등 예상치 못한 인기를 누리게 됐다. 2000년대 초중반 드라마 ‘야인시대’와 영화 ‘타짜’에 출연한 배우 김영철과 김응수도 각각 작품 속의 대사인 ‘4딸라’와 ‘묻고 더블로 가’가 10년이 훌쩍 지난 뒤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밈으로 탄생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이를 통해 광고계를 휩쓸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한들, 황당무계한 사기극의 일부인, 심지어 많은 피해자들을 발생시킨 전청조의 말투가 밈으로 떠도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밈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피해자들을 조롱하고자 의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도와는 다르게 피해자들에 대한 비웃음이 될 수도 있고, 타인의 공포와 절망적인 상황을 상기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의 놀이문화가 된 밈은 동시에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아왔다. 지난해 10.29참사에서도 ‘누칼협’(누가 칼들고 그런 일을 하라고 협박함?)이란 밈이 나돌았다. ‘그런 일을 당한 건 개인의 잘못이다’. 즉 사고가 발생한 장소에 간 것도, 그곳에서 논 것도 모두 개인의 선택이니 이를 사회적인 참사로 다뤄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10.29참사가 경찰의 늑장 대응, 밀집된 군중을 관리하는 시스템 부재로 인한 사고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밈의 위험성도 드러났다. 사안의 다양한 쟁점을 보지 못하고 유행처럼 떠도는 밈을 소비하면서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EBS 애니메이션 ‘포텐독’은 작품 삽입곡 ‘똥밟았네’ 뮤직비디오가 밈처럼 퍼졌는데 이 안에 불법 동영상 촬영을 희화화하는 등 혐오가 개입되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됐다. 또 2020 됴쿄올림픽 중계방송 당시 방송사들은 밈을 적극 활용하다가 잇따라 방송사고를 맞기도 했다. MBC는 축구 중계 도중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유행한 ‘고마워요, 지지 사토’를 변형한 자막을 넣었다가 해당 국가를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박성제 MBC 사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고, 보도본부장과 스포츠국장 등이 물러났다.
이런 사례는 재미와 흥미에 초점이 맞춰진 밈의 특성상 역사적 사실이나 그 안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보여준다. 이번 전청조밈의 위험성이 지적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의 사고와 나아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밈을 여전히 ‘조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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