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공매도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내년 6월까지 주식 공매도 제도를 전면 금지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동안 공매도 전산화 시스템 도입, 외국인과 개인 간 차이나는 담보비율‧상환기간 등 일반투자자들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해 온 공매도 제도에 대해 금융당국은 현실적으로 제도 개선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일관적으로 피력해왔다. 또 공매도 전면금지에 대해서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입장이었다.
그간의 입장과 달리 공매도 전면금지 및 제도개선 추진을 들고 나온 이유에 대해 금융당국은 최근 글로벌 경제의 성장세 둔화 등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불법공매도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다만 국민 대다수가 하고 있는 주식투자(주식투자자 수 1400만명)에서 늘 불공정한 부분으로 꼽혀왔던 공매도 제도를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개선하겠다고 나선 금융당국의 모습은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방향 선회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 회의를 열고 한시적으로 공매도 제도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석했다.
금융위의 이번 결정에 따라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6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공매도가 전면금지된다. 공매도가 풀리는 시점은 내년 7월부터다.
금융당국은 현재처럼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종목에 한 해 공매도를 재개할지 여부는 추후 시장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또 금융당국은 불법공매도(무차입공매도)를 꾸준히 조사하고 공매도 상환기간 및 담보비율, 공매도 전산화 등 공매도 제도개선 문제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무차입공매도 성행…개인투자자는 불공평 외쳐와
공매도는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있지만 주식을 빌려 주가가 떨어질 때를 노려 수익을 내는 투자기법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식을 빌린 상태에서 공매도 주문을 넣는 차입공매도만 허용하고 있다. 차입공매도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에 속하는 대형주 350개 종목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문제는 정상적인 차입공매도만 이루어지면 다행이지만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채 공매도 주문을 넣는 무차입공매도(불법공매도)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무차입 공매도로 사익을 추구한 외국계 금융사 2곳(BNP파리바‧HSBC)을 적발하기도 했다.
또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제도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을 끊임없이 해왔다. 외국인‧기관투자자는 상환기간이 무제한인 반면 개인투자자는 90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 담보비율 역시 외국인‧기관은 105%인 반면 개인투자자는 120%로 더 높다는 점 등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공매도 제도의 불공평한 지점으로 꼽는 대목이다.
더불어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전산화도 요구하고 있다. 외국인‧기관투자자가 공매도 주문을 넣고 이를 국내 증권사들이 받아 주문을 넣는 과정 등이 수기로 이루어지면서 이 과정에서 불법공매도가 이루어지는 있는 상황이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는 ‘공매도 제도 개선’ 요구에 대해 5만명 이상이 동의하면서 정무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공매도 개선요구에도 지금까지 금융당국은 ‘회의적’
공매도 제도개선 요구 목소리에 그동안 금융당국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열린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실시간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대차거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거래 목적이 여러 가지이고, 전화나 이메일 등 이용하는 플랫폼이 다 달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파악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금융당국은 그동안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해서라도 공매도를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현재 시행하고 있는 공매도 금지 조치는 글로벌 기준에서 봤을 때 맞지 않다는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유입 등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도록 공매도를 완전 재개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갖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올해 초 진행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증시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기준치를 충족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소액주주 보호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증시를 더 매력적인 시장으로 만들려면 2023년은 규제 완화를 위한 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금융당국 수장들의 언급을 종합해보면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 및 제도개선 추진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갑작스런 방향 선회, 왜?
그동안의 입장과 달리 금융당국은 이날 공매도 전면금지와 공매도 제도개선을 전격적으로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공매도 전면금지 및 제도개선의 취지를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한 전환점으로 꼽았다.
김주현 위원장은 “시장 불확실성과 함께 외국 주요 IB의 관행적인 불공정거래가 계속되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는 한 한국의 자본시장은 공정한 가격형성과 공정한 거래질서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공매도를 금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관행적인 불법행위를 그대로 놔두면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신뢰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문제를 개선하는 게 의무이고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중장기적으로 발전시키는 전환점이 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다만 외국인‧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간 상환기간 및 담보비율 차이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누가 봐도 (외국인‧기관투자자 및 개인투자자 간) 차이가 있는 게 맞다고 본다면 금융당국은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는 게 뭔지(어느 한 쪽을 완화하거나 더 강화할지 등)를 찾아보겠다”며 “지금 저희가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논의과정에서 다양한 (시장)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감원은 공매도 전면금지기간에도 불법 공매도(무차입 공매도) 문제를 꾸준히 조사하고 적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6일부터 공매도 특별조사단을 출범시켜 글로벌IB전수조사에 나선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현재 일부 글로벌IB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며 공매도 거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약 10개 글로벌IB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아울러 공매도 주문을 수탁하는 국내 증권사에 대해서도 법규준수 및 운영상의 문제점이 없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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