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규모 종합문학상인 제3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시 부문에서 김기택 ‘낫이라는 칼’ ▲소설 부문에서 현기영의 ‘제주도우다’ ▲희곡 부문에서 이양구 ‘당선자 없음’ ▲번역 부문에서 마티아스 아우구스틴·박경희 ‘Der Wal(고래)’가 선정됐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 상금 5000만원과 대산문학상 고유 상패인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작품 ‘소나무’가 수여된다. 수상작은 2024년 외국어로 번역해 해외 출판될 예정이다.
시 ‘낫이라는 칼’은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지적 생명의 노력을 미적으로 완성도 높게 표현한 점을 인정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인생의 무게를 견디는 자세를 날카롭고 단단하게 빚어낸 시집”이라고 호평했다. 김기택 시인(66)은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김수영문학상(1995), 현대문학상(2001), 대한민국예술원상(2022) 등을 받았다.
소설 ‘제주도우다’는 제주의 신화와 설화의 소용돌이를 현재적으로 되살리고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제주 삶의 실상과 역사를 종횡으로 넘나들면서 4.3의 비극을 넓고 깊게 해부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엄청난 국가 폭력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시선과 발길을 따라가며 전개되는 애도의 서사가 한국판 홀로코스트 문학의 한 극점을 절감하게 했다”고 평했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해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현기영 작가(82)는 신동엽문학상(1986), 만해문학상(1990) 등을 수상했다. ‘순이 삼촌’ ‘제주도우다’ 등 제주 4·3사건을 다루면서 제주4·3평화상(2019)을 받기도 했다. 현기영 작가는 “제주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지만, 한때 가장 참혹한 참변을 겪었던 곳이다. 그 아름다움과 참혹한 비극을 껴안고 지금까지 왔는데, 제주의 아픈 역사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희곡 ‘당선자 없음’은 사회성과 작품성의 조화에서 빼어난 균형감을 찾으며, 현실 참여적 희곡 문학의 빼어난 모범을 보여준 점을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단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서사를 끌어가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해 해방 직후 제헌헌법 정신에서조차 후퇴한 오늘날의 법, 제도, 검열, 통제 문제를 되묻고 있는 문제의식의 날카로움이 돋보였다”고 설명했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한 후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재 극단 해인을 이끄는 이양구 작가(48)는 “현재 우리 사회는 마음, 관계, 국가 등의 균형이 무너진 듯하다”며 “공정이란 키워드로 작품을 쓰면서 균형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번역 부문에선 올해 부커상 후보로 지명된 천명관의 ‘Der Wal(고래)’을 독어 번역한 마티아스 아우구스틴(55)·박경희(54) 번역가가 선정됐다. 두 사람은 독일 본대학교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부부 번역가다. 박경희 번역가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독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단은 “방대한 소설의 양과 긴 길이의 문장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방식으로 번역해 냈으며, 충실성과 가독성을 두루 갖춘 번역으로 이야기의 힘을 살려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심사평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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