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7월 실업급여 부정수급액 19억원
지난해 실업급여 재정 수지 ‘5650억 적자’
정부·여당 “‘하한액’ 줄이고 조건 높이자”
민주당·노총은 “실업급여 지출 늘려야”
# 경남에 사는 A씨는 실업급여를 받다가 재취업했지만 계속 실업 중인 것처럼 속여 정부로부터 총 170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았다. 전북에 사는 B씨는 재취업에 성공했음에도 사업주와 짜고 자신이 아닌 배우자가 취업한 것처럼 신고해 총 1500만원 실업급여를 받아갔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5~7월 실업(구직)급여 부정수급을 특별 점검해 적발해 낸 실제 사례다. 해당 기간 동안 고용노동부가 적발한 부정수급자는 380명이었다. 이들이 부정하게 수급한 실업급여액만 19억1000만원에 달한다. 또 고용노동부는 고액 부정수급자 등 범죄행위가 중대한 217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겼다. 끝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연말까지 실업인정일과 해외 체류 기간이 중복된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 185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나설 방침이다.
실업급여 ‘모럴 해저드’는 하루이틀 얘기가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11일 발표한 ‘우리나라 실업급여 제도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최저임금과 연동된 실업급여 하한액(최저임금의 80%)도 급격히 올라 세후 기준으로는 오히려 임금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올해 실직자의 실업급여는 월 185만원으로 최저임금 201만원의 92% 수준이다. 최저임금은 세금을 제하면 180만원 아래로 내려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실업급여를 개편하겠다는 입장을 수 차례 밝혀왔다. 부적절하게 새는 돈을 줄여 세수를 확보하고 재정건전성을 확립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여당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수급자의 근로의욕을 저해하는 현행 구직급여 제도를 개편하는 내용을 담아 지난 5월 발의한 ‘고용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실업급여 하한액 기준을 없애는 대신 개별연장급여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수급자격자가 이직일 이전 5년 동안 2회 이상 실업급여를 지급받은 후 다시 실업급여를 지급받는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반복수급 횟수에 따라 급여액을 감액하고 급여일수를 단축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특히 실업급여 지급요건인 근무 기간을 180일에서 10개월로 연장하는 대신, 생계가 어려운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개별연장급여를 현행 급여액 70%에서 90%로 상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울러 장기 근속자의 최대 소정급여일수도 현행보다 확대하는 등 취약계층 지원과 장기 근속자 우대를 강화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6개월 가까이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계류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반대다. 양대 노총은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하한액 기준을 낮출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위험을 겪는 노동자를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반대 때문이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이 발의한 고용노동법 개정안 발의 수는 19건이다. 해당 법안들은 대부분 저출산 극복 대책을 위해 실업급여 재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의 실업급여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과 반대로 실업급여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개정안을 ‘실업급여 무력화’에 빗대 “‘주 69시간제’에 이어 노동자들에 대한 2차대전 선포”라면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와 지급요건 강화에 반대하고 있다.
문제는 실업급여의 하한액이 조정되지 않거나 지급요건이 바뀌지 않을 경우 국가의 재정부담이 악화된다는 점이다. 경총이 지난달 18일 실업급여를 주는 데 쓰이는 고용보험기금의 결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적립금은 3조7000억원으로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차입한 7조7000억원보다 4조원이 적었다. 사실상 4조원 규모의 빚을 떠안은 셈이다. 지난해 실업급여 계정의 재정수지도 수입은 13조5765억원이었는데 지출이 14조1325억원으로 5650억원 적자를 봤다.
더 큰 문제는 자동 육아휴직제가 도입될 경우다. 현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근로자들이 육아휴직제를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을 추진하며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육아휴직 사용이 어려운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미사용 신청서’를 내게 해 최대 2년까지 부모가 아이 양육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자동 육아휴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고용보험료를 대폭 올리거나 막대한 정부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에 국민의힘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줄여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최대 60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세수 펑크’가 우려되는 상황이라 재원 마련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따라붙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등 야권은 주로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구직급여 90일 추가, 육아휴직급여 인상, 배우자 출산휴가(유급) 연장, 가족돌봄휴직 유급화, 난임휴직(유급)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고용노동법 개정안을 통해 오히려 실업급여 재원을 더 늘려 자동 육아휴직제의 재원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홍석준 의원은 “실업급여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반복수급 하는 문제를 방치하면 결국 성실하게 일하는 선량한 노동자만 피해를 입게 된다. 장기 근속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실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직자와 취약계층에 보다 많은 지원을 하기 위해서도 물이 새고 있는 실업급여 제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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