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9월 경상수지가 54억2000만달러 흑자로 다섯 달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지난달보다 서비스수지 적자폭이 확대됐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 중심으로 승용차 수출이 호조를 이어가고 반도체도 회복 흐름을 보이면서 상품수지가 개선된 영향이다. 다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든 ‘불황형 흑자’가 지속되는 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 전쟁으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고 중국 경기의 회복 속도도 예상보다 더딘 점은 향후 우리 경제의 변수로 남아있다.
◆경상흑자 54억달러…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올해 9월 경상수지는 54억200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지난 4월 7억9000만달러 적자를 낸 이후 5월(19억3000만달러)과 6월(58억7000만달러), 7월(37억4000만달러), 8월(49억8000만달러) 이어 5개월째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경상수지가 5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3~7월 이후 14개월 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1~9월 누적 경상수지는 165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57억5000만달러에 비해 약 35%나 줄어들었다. 항목별로는 상품수지가 74억2000만달러로 지난 4월 이후 6개월 연속 흑자를 나타냈지만 이는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든 영향이다. 9월 수출은 556억5000만달러로 지난해 동월 대비 2.4% 감소했지만, 수입은 482억3000만달러로 14.3% 줄었다. 감소액과 감소율 모두 수입이 수출을 크게 웃돌면서 ‘불황형 흑자’ 형태를 지속했다.
수출의 경우 승용차(9.1%)가 호조를 지속했으나 반도체(-14.6%), 화학공업제품(-7.3%), 석유제품(-6.9%) 등의 실적이 1년 전에 미치지 못하면서 1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다만 반도체 등의 감소 폭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반도체 경기는 저점을 통과해 회복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역별로 보면 미국(8.5%), 유럽연합(EU·6.5%)으로의 수출은 증가했지만 중국(-17.6%), 동남아(-7.4%), 일본(-2.5%) 등으로의 수출은 부진했다. 수입은 에너지 수입가격 하락으로 원자재 수입이 20.9% 줄었다. 특히 원자재 중 가스, 석탄, 원유 수입액 감소율은 각 63.1%, 37.0%, 16.2%에 달한다. 반도체(-21.4%)와 수송장비(-5.4%) 등 자본재 수입이 12.2% 줄어든 가운데, 곡물(-30.3%) 등 소비재 수입도 9% 축소됐다.
서비스수지는 31억9000만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적자 규모가 8월(15억7000만달러)의 2배 이상으로 커졌다. 여행수지 적자가 9억7000만달러로 전월(11억4000만달러)과 비교해서는 적자가 줄었고, 지식재산권수지는 6억7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9월(4억5000만달러)과 비교해도 적자 폭이 커졌다. 신 국장은 “8월 중국 정부가 국내 단체 관광을 허용하면서 중국 관광객 입국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9월 숫자를 보면 중국 관광객 수가 연중 최고치긴 하지만 가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며 “입국자 수도 코로나19 전과 비교하면 절반 보다 적은데 한·중간 항공 여객선 수나 제반여건 등이 취약해진 부분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중국 여행객의 패턴이 개별 관광 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본원소득수지는 배당소득을 중심으로 15억7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지난 5월 플러스로 돌아선 후 5개월째 흑자다. 흑자 폭이 전월(14억6000만달러)보다는 소폭 늘었고, 전년 동월(27억달러) 대비로는 줄었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융계정 순자산은 9월 중 45억2000만달러 증가했다. 직접투자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20억달러,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3억5000만달러 각각 늘었다. 증권투자에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65억7000만달러,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13억7000만달러 증가했다.
◆10월에도 흑자 기조…반도체 경기 회복= 한은은 10월 경상수지 전망에 대해 흑자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국장은 “10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9월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며 “4분기 전체로 보면 반도체 회복 흐름, 자동차 수출 호조 지속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국장은 “유가 불확실성, 동절기 난방용 에너지 수입 증가 등의 가능성이 있어 3분기보다는 흑자 규모가 줄 수 있지만 연간 전망치인 270억달러에는 부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가 270억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향후 10월부터 12월까지 월평균 35억달러 흑자를 기록하면 전망에 부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다섯달째 이어지고 우리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경기가 회복 국면에 들어섰지만 향후 전망을 낙관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중동 분쟁이 확전양상으로 번지면 국제유가가 급등해 경상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가 가격 면에서 감산 효과 등이 나타나고 하이엔드 부문에서 상황이 개선되는 게 보이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전체적으로 그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는 게 문제”라면서 “최대 수요자인 중국 경제 회복이 느리고 중국 관광객 효과도 예상보다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10월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향도 작용할 예정”이라며 “불황형 흑자에서 빠져나올 변수는 중국경제를 포함해 글로벌 경기와 반도체 경기 등 3가지인데 회복 속도를 볼 때 본격적인 반등은 내년 중후반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수출이 얼마나 빨리 회복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품목, 수요 등 불확실한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기조로 소비, 투자가 살아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데다 수출 마저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면서 내년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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