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핸드폰 가게를 들렀지
‘아버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많이 놀랐네
식당에 갔더니 ‘어르신’이라 하더구먼
역시 당혹스러웠네
자식세대들은 우릴 가리켜 ‘꼰대’라고 하더구먼
어려서는 개똥이 소똥이라 불렀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네– ‘애노가(愛老歌)’ 중에서. 송길원
[이모작뉴스 김남기, 심현주 기자] 양평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자, 커다란 바람개비, 부활절 나무 등 다양한 조형물, 그리고 자연의 모습을 닮은 나무가 심겨 있는 수목장과 잔디장 공간이 펼쳐졌다. 반대편으로는 잔디밭 위 푸른색 계란 모양의 건물이 보였다. 두 곳을 가로질러 도착한 건물 안에는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을 차용한 ‘Cafe diem’이 있었다. 그곳에서, 장청년(壯靑年)인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를 만났다.
노인(No人)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24년이면, 58년생 베이비부머세대가 정식 고령인구인 65세가 된다. 이제 고령인구 1000만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노년세대를 부르는 용어로 노인, 시니어, 어르신 등 여러 가지가 사용된다. 그러나 노인이나 어르신은 듣는 사람이 거부감이 든다는 의견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화된 단어임에도, 편하게 사용하기는 어렵다.
‘시니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지만, 청년‧중년‧장년으로 불리다가 시니어라는 외국어가 입에 잘 안 감긴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100세 시대에 65세 이상을 ‘노인’, ‘고령자’ 등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송길원 대표는 대체 용어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이패밀리가 55년생부터 74년생까지 시니어 1,720명을 대상으로, ‘노인’ 대신 어떤 용어로 대체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조사 시, 유엔(UN) 기준과 국립 국어 연구원에 등재된 나이 분류를 참고했다. 송 대표는 여러 문건과 시대상을 반영해, 100세 시대에 79세까지는 청년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사 결과, 해당 세대가 직접 불리고 싶다고 가장 많이 고른 것은 ‘씩씩할 장(壯), 푸를 청(靑)을 쓴, ‘장청년(壯靑年)’이었다. 다시 한번 ‘씩씩하고 푸른 세대’라고 불리고 싶은 노년 세대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노인(老人)은 늙은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늙을 노(老)가 들어간 단어는 노망(老妄), 노욕(老慾) 등 부정적인 용어만 가득했다. 따라서 송 대표는 인생의 ‘길이 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길로(路)자를 써서, 80세부터 노년(路年)‧노인(路人)이라고 부르는 걸 고안했다. 용어를 대체하는 것부터 이들에 대한 존엄함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또 100세 이상을 ‘완년(完年)’이라고 정했다.
송 대표는 지금껏 ‘시니어’나 ‘노인’이든 그 세대를 부를 때 이렇게 부르겠다고 선언하는 형식이었지만, 이번 조사 결과물은 당사자가 이렇게 불러달라고 제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미 송 대표는 혼혈이라는 말 대신, ‘다문화’라는 용어를 최초로 제안했다. 지금은 어디서든 다문화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된 것처럼, 송 대표는 장청년이나 노인(路人)이라는 용어 또한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널리 정착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용어 지칭과 더불어, 송 대표는 세대구분에 대한 나이 상한선을 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했다. 현재 65세가 어느 정도 기준이 되어 있지만, 제도와 지자체마다 나이의 기준이 제각기 다르다. 그래서 송 대표는 국회에 입법권을 가진 고령화 특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에 의견을 제시했고, 현재 함께 포럼 준비도 하는 중이다.
추모가 있는 작은 장례식
최근 웰엔딩 문화가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사회적 돌봄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존엄한 죽음과 장례문화와 관련해서는 아직 사회적 공감이 덜 성숙했다.
송 대표는, 노년 세대의 주요 관심사는 ‘내가 어떻게 죽고, 또 죽어서는 어떻게 묻힐 것인가’이다. 현재의 장례는 중환자실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장례식장에서 삼일장을 치르고, 화장하고 유골로 봉안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추모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그래서 송 대표는, 추모가 있는 ‘작은 장례’를 위해 노력 중이다. ‘작은 장례’란 장례식에 방문하는 인원의 많고 적음을 이야기하는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장례는 형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추모 중심의 장례문화를 정착하는 것이다.
현재, 장례식에는 방해요소가 많다. 보통 장례를 치르게 되면 고인이 돌아가신 시간과 관계없이 그날을 1일로 하고, 이틀 뒤인 3일까지 장례를 치르는데, 이 장례 시간이 많은 사람의 생업을 방해한다. 장례를 준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장례식을 방문해야 하는 사람도 생업을 포기하고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금요일에 고인이 돌아가시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3일째에 화장해야 하는데 일요일에 문을 여는 화장장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여기서 장례 치렀던 가족은 작은 장례식으로 10일 장을 치렀다. 미국에 사는 딸이 한국까지 오는 시간이 필요했고,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라 그 다음 주 토요일 1시에 장례식을 하겠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조문객이 방문하니까 간소했다. 저온 냉장 시설 등 이곳의 시설을 모두 사용하고도 총 장례비용으로 5만 원을 청구했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방문객에게 흙내음이 나는 원두를 나누어줬기 때문이다. 그 원두 비용이 5만원이었다.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고인의 시체는 안치실에 두고서, 꽃으로 액자 주변을 둘러싼 채 텅 빈 곳을 향해 절을 한다. 그리고 고인의 얼굴을 볼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한다.
– 송길원 대표
송 대표는 하이패밀리에서 치러지는 작은 장례식에서 ‘메모리얼 테이블’을 준비한다. 테이블 위에 고인이 생전에 쓰던 물건을 올려두고, 물건을 통해 고인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그 추억을 공유하며, 방문객과 가족은 고인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추모가 있는 수목장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하이패밀리에서 장례식과 수목장을 이용하고, 추모도 할 수 있다. 특히 교회 건물 뒤편에는 저온 냉장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이 시설을 이용해, 고인의 가족은 원하는 기간 동안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저온 냉장 시설은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와 가족 매장을 위해 만든 가족묘지 ‘Machpelah’에서 유래해 ‘호텔 막벨라’라고 이름 지어졌다. 고인의 가족은 이 호텔 막벨라에서 장례식 내내 고인의 얼굴을 보는 등 원하는 방식으로 추모의 시간을 보낸다.
어떤 부모가 37살 외아들을 급성 심근경색으로 손 쓸 틈도 없이 보냈다. 그때 그 부모 마음이 어땠겠나.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 남편을 잃으면 과부, 아버지나 어머니를 잃으면 고아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이름을 차마 붙일 수 없어서 부르는 이름이 없다.
젊고 건강했던 아들이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 부모는 경찰 입회하에 아들의 사망 확인을 하고, 병원에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상조회나 수목장이 준비된 것도 아니었다. 이후, 부모는 아들을 묻을 장소가 필요했고 이곳에 안치를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 송길원 대표
땅에다 유골함을 묻고 나면 일반적으로 장례가 끝난다. 하지만 그 부모는 떠날 수가 없어서 아들을 묻은 이곳을 찾는다. 아들이 있는 곳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송 대표는 창문 너머 잔디밭 위, 푸른 계란 모양의 청란교회를 가리켰다. 아들을 떠나보낸 그 부모는 푸른 계란 안 작은 파이프 오르간을 계속해서 연주했다고 한다. 부인과 남편은 아이가 좋아했던 노래와 신앙 고백이 담긴 노래를 하염없이 불렀다. 송 대표는 그 부모가 노래를 부르면서 추모할 시간을 충분히 보냈을 것이라며, 외아들을 갑작스럽게 잃은 상처가 조금은 치유됐을 거라고 믿었다.
암 환자의 버킷리스트를 풀어주는 ‘앰뷸런스소원재단’
하이패밀리는 암환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앰뷸런스소원재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암환자에는 소아암환자도 포함된다. 그리고 앰뷸런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임종 직전인 노년 세대의 소원을 들어준다.
앰뷸런스 재단으로 연락이 오는 경우, 주로 어떤 곳을 가고 싶다는 소원이 많다. 최근에는 췌장암 말기 환자가 얼마 전 결혼한 딸의 집을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앰뷸런스는 현재 3대가 운영되고 있다. 2대는 구세군에서, 1대는 배우 이영애 씨가 기부했다.
어린이용 앰뷸런스는 성인용보다 크기가 훨씬 크다. 어린이 환자는 보통 부모나 가족과 함께 이동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나 색상도 어린이 관점에서 만들었다. 어린이가 앰뷸런스 모형 차를 갖고 놀 때에는 재밌는데, 실제로 이 차를 타면 주사를 맞게 된다는 걸 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빨간색은 모두 배제하고 병원 문양 대신 캥거루 캐릭터도 붙여, 편하게 올라탈 수 있도록 배려했다.
– 송길원 대표
정인이가 묻힌 안데르센 공원묘원
송 대표는 앰뷸런스소원재단 일을 하면서, 죽음에서조차 어린이가 배제된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안데르센 공원묘원’을 고안했다. 수목장 부지 내 어린이를 위한 무료수목장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하필 정인이가 여기로 왔다. 입양 후, 양부 양모에게 끊임없는 학대를 받다가 하늘로 간 정인이. 송 대표는 두 손으로 직접 정인이를 이 곳에 묻었다.
정인이가 묻힌 곳 바로 뒤에, 엄청난 규모의 ‘성경벽’이 있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모든 구절을 새겨 만든 벽이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성경 한 구절씩 새겨진 조각이 조금씩 나부꼈다. 성경 조각이 함께 흩날리며,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모습을 이루었다. 그리고 바람과 성경벽의 어우러진 소리는 이 곳에 묻힌 모든 이에게, 그리고 이 곳을 찾는 가족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악연에서 인연으로 만난 반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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