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이후 전기요금 인상 문제 다시 불거질 확률 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대상을 산업용(대용량)으로 한정하는 절충점을 찾았지만 이것 만으로는 한국전력의 역마진 구조를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전기요금 인상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한전이 내놓은 추가 자구책을 놓고도 ‘미봉책’이라는 평가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역으로 내년 총선 이후 전기요금 인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를 수 있음을 뜻한다. 한전의 적자가 눈에 띄게 개선될 조짐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전기요금 인상론’은 불가피해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오는 9일부터 대용량 고객인 산업용(을)에 대해서만 전기요금을 ㎾h당 평균 10.6원 인상하기로 했다.
한전에 따르면 이번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올해 말까지 4000억원의 재무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 연간으로 따지면 2조7000억원가량의 적자 감축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요금 인상 대상이 된 산업용(을)의 전력 사용량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사용량의 48.9%를 차지했다. 이를 고려해 부분적인 전기요금 조정만으로도 한전의 재정 부담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실제로 이번 산업용 요금 인상으로 턱밑까지 차오른 한전채 한도에도 숨통이 트였다. 한전채 발행 한도를 규정한 한전법 재개정은 간신히 피했다는 뜻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한전채 잔액은 79조6000억원으로, 한전은 지난 9월 5000억원의 사채 신규 발행 이후 추가 발행을 하지 않고 있다.
국제 에너지가 하락과 지난 5월 전기요금 인상 효과에 힘입어 올해 3분기(7∼9월) ‘반짝 흑자’와 4분기(10∼12월) 적자 폭 축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한전은 사채 발행을 최소화하는 대신 은행 대출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전력을 비싼 값에 사들여 싼값에 파는 역마진 구조는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한창 오를 때 이를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는 누적 적자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2021년 이후 한전의 누적 적자는 47조원이 넘는다.
따라서 산업용뿐 아니라 전체 요금 구조를 에너지 원가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총선을 불과 5개월여 앞두고 전반적인 요금 인상은 여권 입장에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는 역으로 내년 총선 이후 전기요금 인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를 수 있음을 뜻한다. 당분간 한전의 적자가 눈에 띄게 개선될 조짐이 없으므로 ‘전기요금 인상론’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말 한전의 재정난 해소를 위해 ㎾h당 51.6원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올해 1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h당 21.1원을 인상하는 데 그쳤다.
한전은 이번 산업용 요금 인상을 전체 요금체계에 적용할 경우 ㎾h당 약 5.2∼5.3원가량의 인상 효과를 거둘 것으로 추계하고 있어서 인상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전은 지난 5월 전기요금 인상을 앞두고 전력 그룹 전체적으로 25조7000억원 규모의 자구책을 내놓은 데 이어 이번에도 인력 효율화와 자산 매각을 골자로 한 추가 자구책을 제시했다. 특히 한전의 상징적인 자산인 서울 노원구 공릉동 인재개발원 부지 매각과 관련해서는 “절박한 심정으로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재개발원 부지의 현재 시가는 2500억원가량으로, 한전은 자연녹지가 대부분인 해당 부지를 상업용 등으로 용도 변경해 가치를 높여 매각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가치가 78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인재개발원 부지 매각 결정에도 불구하고 추가 자구책이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은 불가피해 보인다. 인력 효율화 계획이 대표적이다. 당장 비대해진 몸집을 줄이기 위한 임직원들의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만큼 추가 자구책에 ‘희망퇴직’이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졌지만, 사실상 희망퇴직을 흉내 내는 수준에 그쳤다.
한전은 이날 희망퇴직과 관련해 “위로금 재원 확보 범위 내에서 희망자를 대상으로 시행할 것”이라며 “2급(부장급) 이상 임직원의 내년 임금 인상 반납액 등을 위로금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희망퇴직 시점이나 규모 등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전은 희망퇴직 위로금을 마련할 재원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퇴직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알짜’ 자회사로 꼽히는 한전KDN의 지분 20% 매각 역시 현실성, 시의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전이 ‘한전KDN의 매각가치 제고를 위해 국내 증시 상장을 통한 보유 지분 20% 매각 추진’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상장 후 매각까지 1년가량이 걸린다는 점에서 벼랑 끝에 선 한전의 즉각적인 자구책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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