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충돌해온 중국의 국제수입박람회(CIIE)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의 제재를 받은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과 미국의 대중 수출 제한 조치로 핵심 장비 수출길이 막힌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까지 부스를 마련해 현지 정부, 기업 관계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며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모습이다.
재계를 중심으로 먼저 미·중 관계 회복에 나선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5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양국의 본격적인 화해 무드가 시작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이고 있다.
美 반도체 업체가 中 박람회에?…”협력 강화 희망”
7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상하이에서 5~10일 개최되는 CIIE의 집적회로 특별관에는 삼성전자, 마이크론, 퀄컴, AMD, ASML 등 반도체 관련 기업 47곳이 참가해 부스를 세워놓고 현지 고객들과 만났다.
CIIE는 중국이 대외 개방과 수입 확대를 목적으로 2018년부터 추진해 온 수입 전문 박람회다. 시 주석이 기획 단계에 직접 관여하는 등 상당히 공을 들이는 행사로 알려졌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참가 기업은 마이크론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5월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돼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제품 구매 중지 조치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에 대응해 일종의 ‘보복 제재’를 부과했다는 해석이 나왔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정부는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나는 등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론은 이 행사에 올해 처음 부스를 마련했는데 이곳에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니콜라스 번스 대중 미국 대사가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마이크론 부스의 한 직원은 미국 업체들이 사업적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중국에 대한 신뢰를 보이기 위해 이 부스에 직원 70~80명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국 반도체 업체인 AMD도 올해까지 3년 연속 행사에 참여했다. AMD는 부스에서 데이터센터와 소비자 가전에 사용할 인공지능(AI) 솔루션을 선보였다. 스펜서 팬 AMD 수석 부사장은 중국 현지 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CIIE에 부스를 마련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ASML·삼성 현장 부스에 中 정부 관계자들이…
미국 외에도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ASML이 이번 행사에 부스를 마련했다. 미국의 대중 수출 제한 조치를 고려해 부스에는 비교적 낮은 사양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배치했고, 이 부스에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잇따라 이 부스에 방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한다.
또 삼성전자가 마련해둔 부스에 중국 정부 관계자가 방문하고 최신 소비자 제품을 소개하고 중국과 관련한 반도체 산업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웨이퍼를 선보였다고 SCMP는 전했다.
이처럼 CIIE가 북적이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우려에도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번스 대사는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올해 역대 최다 미국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며 “미·중 간 교역 규모는 지난해 사상 최고 수준인 690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공급망 등을 완전히 분리하는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제거)”이라면서 “미·중은 상호 경제 관계를 완전히 떼어내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이든-시진핑, 15일 샌프란서 회담할 듯”
이러한 분위기는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교도통신은 이날 익명의 미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두 정상이 오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에서 회담하기 위해 막바지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양자 회담이 성사되면, 이는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1년 만에 첫 대면 회담이 된다. 중국은 시 주석의 APEC 참석 여부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앞서 백악관은 APEC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는 시 주석이 다음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예정된 미국 기업인들과의 만찬에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중국 경제 둔화와 미·중 갈등으로 서방 기업들이 대중 투자를 기피하는 가운데, 시 주석은 이번 방미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진정시키는 것이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미·중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교도통신은 미국이 중국과의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군 당국 간 대화 재개를 희망하고 있으나, 대만 문제와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한 등 난제가 쌓여 있다고 전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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