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중 전 EBS 사장은 ‘펭수 사장’이라 불린다. 2019년 3월 EBS 사장을 맡고, 한 달 만에 펭수를 론칭했다. 펭수는 유교문화 틀을 걷어낸 획기적 캐릭터였다. 시도 때도 없이 ‘김명중’이란 이름을 직책 없이 거론했다. 덕분에 김 사장은 역대 가장 대중적인 EBS 대표가 됐다. 유치원 어린들조차 ‘EBS 사장 아저씨 이름은 김명중’이라 할 정도였다. 퇴임식 때 펭수는 ‘김명중 가지마’란 피켓을 들었다. 그런 분위기는 교육 방송이란 자못 무거운 이미지에 참신함을 더했다. 언론학자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아리랑TV 등에 몸담았던 김 전 사장은 펭수 탄생 과정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리더는 마음을 만지는 사람(EBSBOOKS)’를 펴낸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펭수 사장’으로 잘 알려졌다. 펭수의 외침으로 역대 EBS 사장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도 얻었다. 지난해 퇴직 뒤 어찌 지내나.
▲올 초부터 광주과학기술원 아카데미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지역 기업가들과 소통하고 있다. 일상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관 전체에 대한 책임이 없어 심적으로 매우 가볍다(웃음). 관성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펭수는 EBS 호감도를 높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탄생 이면에 다양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우연과 필연이 작용했다고 보나.
▲EBS 사장에 취임하고 한 달 만에 론칭한 캐릭터다. 초기에는 구독자 수가 예상만큼 많지 않아 제작진의 고심이 깊었다. 일부에서는 중도에 접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인적·물적 지원을 약속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중심이 되도록 태스크포스(TF)로 독립시켜 간섭에서 자유롭게 했다. 빨리 성공하겠다는 조바심에 과속하거나 오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당시 사내에서 가장 유능한 부장을 설득해 TF 팀장을 맡겼는데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연매출 200억원을 넘으면 자회사로 분리하려 했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틈나는 대로 사장 이름을 연호하는 펭수를 너그럽게 포용했다.
▲직장 내 인간관계를 역할극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역할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기본적으로 상하관계보다 유연한 수평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머리는 차가우나 마음은 따뜻해야 한다.
-제2의 펭수가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충분히 마련됐다고 생각하나.
▲사장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는 펭수가 권위주의 청산의 대전환점이 됐다고 본다. 사장 앞에서 구성원이 주눅 들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한 점이 직장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간 것 같다. 펭수 프로젝트를 통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생태계 이해와 구독자와의 소통 경험이 펭수 같은 성공스토리를 더 만들어 낼 토대라고 생각한다. 물론 펭수의 아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획기적인 새 콘텐츠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고민과 연구, 도전이 수반되어야 한다.
-EBS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이룬,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3년 임기 말까지 경영 수지 균형을 이룩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221억원 적자에서 2년 만에 창사 이래 최대 흑자를 달성했다. 다른 하나는 2020년 한 해 대통령상을 네 개나 받은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교육 공백을 해소하려고 한 노력을 인정받아 ‘온라인 클래스’로 정보통신과학기술부에서 대한민국인터넷대상을 받았다. 교육부에서 원격교육 유공표창도 받았고. 다큐프라임 ‘인류세’ 프로그램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을 받았다. 펭수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캐릭터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EBS의 원격교육 활약상이 외신에도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주로 공기관에서 임원으로 일했다. 민간기업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었을 것 같고, 그중에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었을 것 같다.
▲공기관 사장은 오너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공적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한다. 기업은 주주 이익에 중심에 두지만, 공기관은 국민을 위한 공적 서비스 최적화를 지향한다. 이런 이유로 공기업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일이 쉽지 않다.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구성원 수용도도 다르고. 공기업에서 사장은 구르는 돌이고, 직원은 박힌 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3년 임기인 대표가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전문성과 책임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조직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사장실의 문턱을 없애 구성원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군림하기보다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리더는 마음을 만지는 사람’이란 책 제목이 내 지론이다.
-리더로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리더는 설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납득시켜야 한다. 설득은 리더의 관점이고, 납득은 설득 과정을 통해 상대에게 나타나는 긍정의 태도다. 조직의 목표나 성과를 리더 중심으로 설득하지 말고, 구성원 처지에서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납득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조직구성원 에너지가 한데 모여 조직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만큼 어려운 게 인사다. 그런 점에서 ‘사람 보는 눈’을 강조해왔는데….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외부 임명 대표가 단기간에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인재 식별법을 일반화하기도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과거 직원 면접 때 역술인이 함께했다고 하겠나. 그만큼 어려운 문제다. 외모나 평판만 믿으면 우를 범하기 쉽기에 평소 직원들의 강점을 직접 파악해두는 편이다.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기에 뭘 잘하는지를 봐두었다가, 때에 맞춰 직책을 맡긴다. EBS 재직 당시 정책기획본부장, 광고사업부장 등을 그렇게 세웠는데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사람 보는 눈은 일의 효율성에 큰 영향을 끼치기에 평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 문제가 생겼을 때 “그럴 줄 몰랐다”는 변명은 리더 스스로 능력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다.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진 능력을 최대로 펼칠 수 있는 환경 제공도 중요할 텐데.
▲첫째, 책임을 맡긴 이후에는 마이크로매니징하지 않는다. 마음껏 뛸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하고, 최대 역량을 펼칠 환경을 제공한다. 확실하게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게 한다. 성과평가는 엄중하게 하는 편이다. 둘째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꼭 큰일이 아니어도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낸 성과는 충분하게 격려한다. 퇴직한 뒤 어느 부서장이 “사장님이 칭찬과 응원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더라. 전술적 칭찬이 아니라 순수한 존중이었다. 사람들은 그 차이를 민감하게 구별한다. 존중하는 마음 없이 자신을 따라주길 바라는 건 어둠 속에서 윙크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예정하고 있나.
▲이번 책이 출간 3주 만에 재쇄에 들어갔다. 응원을 아끼지 않은 펭클럽(펭수 팬클럽) 회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리더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담은 다른 책을 구상하고 있다. 새로운 내용의 책으로 인사드릴 것 같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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