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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6명 하던 일 혼자하는데 수주 2배…HD현대 변압기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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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 테스트

7일 울산 동구 방어동 HD현대일렉트릭 550kV 변압기 스마트공장. 노란 옷을 입은 육중한 기계가 5초 간격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기계는 길이 약 4m, 두께 약 0.23m의 얇은 회색 전기강판을 들어 올려 바로 옆 평상 위에 내려놓고는 잠시 멈췄다. 공장 천장에 설치한 레이저 장비의 수많은 센서가 시스템에 입력된 각도에 맞춰 강판 위치를 잡아주는 작업이다. 5초 정도 지나자 기계는 다시 철판을 집고 옆으로 이동해 켜켜이 쌓인 또 다른 강판들 위에 살그머니 내렸다.

기계는 이 작업을 반복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양재철 HD현대일렉트릭 변압기 담당 상무는 “변압기 생산공정 중 첫 단계인 철심구조물을 만드는 중”이라며 “예전에는 사람 5~6명이 하던 작업을 이 기계가 대신한다. 지금은 1~2명만 투입한다”고 말했다. 이제 작업자는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에러 난 부분은 없는지 체크하는 게 주 업무가 됐다.

강판 5000장을 1m(높이는 제품마다 다름)까지 쌓으면 철심구조물 1개가 완성된다. 철심은 일종의 철기둥으로 변압기 내부 전기장 통로 역할을 한다. 이날 만들고 있던 철심은 영국 전력 공기업 내셔널그리드에 납품할 3상 변압기에 들어가는 제품으로, 여기엔 철심구조물 7개를 ‘日’ 형태로 이어 만든 철심이 들어간다.

변압기 한 대를 만드는 전기장판 총 3만5000장을 쌓아야 하는 셈이다. 강진호 변압생산본부 책임은 “사람이 하면 밤낮으로 일주일 걸리는 이 작업을 철심자동적층설비를 통해 4일 정도로 줄였다”며 “야간작업이 가능해 제작 효율이 올랐다”고 했다.

공차(公差) 2mm 이내로 쌓아야 하는 철심적층작업은 바늘귀 맞추듯 예민하다. 공차란 도면에 정해진 수치와 실제로 얼마나 차이가 나도 되는지 나타내는 범위다. 쉽게 말해 강판끼리 맞닿는 부위의 간격을 말한다. 양 상무는 “세계 유일 철심자동적층설비를 통해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공차(1mm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이 설비를 국내 로봇 기업과 함께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철심에 순도 99.9999%의 구리선(권선)을 감아놓은 것을 중신이라 부른다. 예전엔 철심 1개씩 감던 권선작업을 이젠 크레인으로 2개에서 5개까지 한꺼번에 조립한다. 중신에 필요한 케이블과 절연물을 연결한 후 진공건조로를 이용해 건조해서 외함(탱크)에 삽입한다. 방열기 등을 부착한 후 시험실에서 시험까지 마치면 모든 공정은 끝난다. 육중한 변압기를 옮길 땐 에어쿠션이라는 설비를 이용한다. 이날도 길이 12m, 높이 5.5m의 250t짜리 변압기를 에어쿠션이 떠받치고 있었다. 에어쿠션 하나가 400~700t까지 들 수 있다.

설계 도면은 2021년부터 3D(입체)로 전면 개편했다. 평면 종이 설계도에 의존하던 과거에는 표준화, 상세화가 돼 있지 않아 설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현장에서도 도면 판독이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부, 연구실, 개발부 직원이 합심해 130여종 3D 캐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생산 곳곳에 설치된 키오스크와 태블릿PC, 바코드를 이용해 모든 작업자가 최신 업데이트 도면을 동일하게 확인하고 설비도 제어할 수 있다. 공장 5층 통합관제센터에선 과거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던 생산·자재관리를 ‘생산운영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공장 내부는 깨끗하다. 입자크기 0.5㎛ 이하의 미세먼지(파티클)를 10만개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관리한다. 미국 연방 관리 규정인 클린룸 규정에 맞춘다. 공장 내벽에는 동그랗게 생긴 장비들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 내부 습도, 온도, 먼지 등을 관리하는 장치(공조기)다. 양 상무는 “반도체 공장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내부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외국 고객들이 자기가 사는 집보다 깨끗하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첨단설비로 가득 찬 이곳은 2018년 기존 공장 4곳 중 1곳을 철거하고 2020년 새로 지은 스마트공장이다. 이날 HD현대일렉트릭은 1977년 회사 설립 46년 만에 언론에 공장 내부를 공개했다. 김영기 HD현대일렉트릭 부사장은 “2018~2019년 시장이 급속도로 침체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800억원을 들여 스마트공장을 준비했다”며 “품질 강화만이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장은 포화상태다. 양 상무는 “주문받아 출시하기까지 10개월 정도 걸리는데 요새는 공장에 생산물량이 꽉 차서 대기 시간까지 14개월 정도 걸린다”고 했다. 스마트공장(연간 생산량 70~80대)에서만 변압기 30대를 만들고 있다. 총조립장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출용과 전남 해상풍력발전단지용 변압기들이 즐비했다. 나머지 3개 공장(300kV, 400kV, 800kV)까지 합치면 변압기 총 100여대를 동시 제작 중이다.

김 부사장은 “이 스마트공장 옆에 내년 10월 준공을 목표로 철심공장을 짓고 있다”며 “철심 조립 공정을 떼어내 새 공장에서 진행하면, 총 조립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완공되면 변압기 연간 생산량이 70대, 금액으로는 1400억원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905억원으로, 이미 전년 한 해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수주잔고는 올 3분기 기준 3조5165억원으로, 2년9개월 만에 2배 늘었다. 3~4년 납기 물량을 채웠다. 올해 들어서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네옴시티 변압기 2170억원어치(사우디 전력청 포함)를 수주했고 미국 엑셀에너지와 2130억원, 덴마크 해상풍력기업 셈코 마리타임에 790억원을 수주했다. 잇단 호재에 HD현대일렉트릭 주가도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8일 사상 최고치인 8만5900원을 기록했다. 올 들어 103% 급등한 수치다.

HD현대일렉트릭은 2017년 4월 HD현대중공업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가 인적분할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했다. 사업은 전력기기, 배전기기, 회전기기 등 중전기 부문에 특화돼 있다. 출범 직후 미국 반덤핑 이슈, 중동 저유가 기조, 한국 탈원전 이슈 등 3중고로 업황이 악화하면서 2018년 1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2019년 취임한 조석 사장은 비상경영체제를 선언, 기존 매출 중심의 외형 성장 전략을 과감히 버리고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은 프로젝트를 과감히 포기하는 ‘선별수주’ 전략에 주력했다. 동시에 선제 투자도 이어갔다. 2019년 미국 알라바마 변압기 생산공장 증설을 완료했고 2020년 울산 스마트공장 구축과 미국 애틀랜타 판매법인 설립을 마쳤다.

수익성 위주 수주전략은 글로벌 탄소중립 실현 기조가 강화하며 급물살을 탔다. 북미와 유럽 중심으로 신재생 발전 투자가 늘어나 시장 수요가 확대됐고 중동 대형 프로젝트도 활발해졌다. 위기 상황 속에 과감히 진행한 생산 시설 투자가 늘어난 시장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된 것이다. 초고압 변압기 기준 최근 2년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시장 1위 지키고 있다. 품질과 업력, 납기 준수 측면에서 중국의 저가 제품을 압도한다.

김 부사장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미국의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 법((IIJA)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며 “중국은 우리보다 기술력은 떨어지나 값싼 변압기를 만들 수 있어 강력한 경쟁자인데, 이런 법안들이 중국산 제품을 제한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늘어난 수주에 대응하기 위해 조석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생산공장을 둘러보며 생산·품질관리 현황을 직접 챙기고 임직원을 독려하며 현장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조 사장은 “석유화학 같은 분야는 설비를 만들어놓고 제품을 찍어내는 거라면 저희는 전형적인 고객 맞춤 주문 제조업”이라며 “미국, 중동 시장을 넘어 새로 진출한 산업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해상풍력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단지 에너지관리시스템(CEMS)을 신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변압기 시장 호황이 내후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 부사장은 “진입장벽이 높은 변압기 시장에서 수주량 증가에 이어 선별수주 효과로 영업이익률도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한국 기업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며 “2033년 장기공급계약을 제안하는 해외 고객사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장기계약을 하겠다는 것은 전력망 투자가 길게 이어질 것이란 방증”이라며 “내년 매출 3조원, 2030년 5조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울산=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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