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자잿값 급등, 분양가 메리트 없어
청약 넣고 계약포기…서울서 줄줄이 ‘줍줍’
“가격 민감도 커져, 실수요자 중심 초양극화 심화”
주택경기 침체에도 청약 완판 행렬을 이어가던 서울 및 수도권 분양시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건설사들이 연말께 그간 미뤄뒀던 분양물량을 털어내고 있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분양가와 고금리에 따른 금융 부담이 커지면서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9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1월은 전국에서 총 4만4003가구가 분양을 대기 중이다. 수도권 3만5520가구, 지방 1만8483가구 등으로 수도권에 전체 분양예정 물량의 80.7%가 집중됐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가 1만6627가구로 가장 많고 인천이 5326가구, 서울 3567가구, 부산 3472가구, 광주 3214가구 등 순이다.
주택경기 침체로 지난해부터 찬 바람이 불던 분양시장은 올 들어 추첨제 확대, 전매제한 완화 등 규제 완화와 향후 분양가 인상 우려가 맞물리면서 호조세를 나타냈다. 특히 미래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청약 수요가 쏠림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시장 분위기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청약불패’라고 불리던 서울에서도 청약 미달, 미계약 물량이 나올 정도로 열기가 가라앉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청약을 진행한 서울 동대문구 ‘이문아이파크자이’는 1순위 청약에서 787가구 모집에 1만3280명이 청약해 평균 16.8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다만 전용 20㎡, 59㎡, 84㎡ 등 일부 평형에선 1순위 모집가구수를 채우지 못해 2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동작구 상도동 소재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는 1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계약 포기가 줄을 이으면서 선착순 분양에 돌입했다. 또 구로구 ‘호반써밋 개봉’은 1순위 청약 당시 110가구 모집에 2776명이 몰리며 평균 25.2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당첨자들이 대거 계약을 포기하면서 공급물량 절반에 가까운 72가구가 무순위 청약으로 나왔다.
저조한 청약성적을 받아든 단지들이 늘어나는 데는 고분양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부 평형이 미달난 이문아이파크자이의 경우 전용 84㎡ 최고 분양가가 13억229만원으로 인접한 휘경자이디센시아, 래미안라그란데 같은 평형대 분양가 대비 2억원 이상 비싸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서울의 민간아파트 분양가격은 3.3㎡당 3200만원으로 1년 전 대비 14.0% 상승했다.
고금리와 자잿값 급등에 따른 공사비 인상 이슈로 분양가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수요자들의 고점 인식과 비용 부담이 가중됐다. 운 좋게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계약까지 이어지지 않고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난 셈이다.
매수심리가 위축되고 앞으로 분양가가 더 오를 거란 전망이 짙어지면서 내년 분양시장 분위기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11월 아파트 분양 전망’에 따르면 이달 수도권 아파트 분양전망지수는 91.8로 한 달 전 대비 10.2포인트 떨어졌다. 서울은 같은 기간 100에서 92.5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고분양가 피로감이 커진 만큼 단지별, 입지별 청약시장 초양극화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가격 민감도가 커지면서 신축 대신 구축으로 선회하거나 높은 분양가를 감수할 정도의 매력을 갖춘 단지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며 “청약 흥행 여부는 공급량 증감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비용 부담이 커진 만큼 내 집 마련이 꼭 필요한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며 “사실상 분양가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수요자들의 움직임도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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