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권에서는 노동계 숙원사업이 이뤄진 것이라며 높게 평가했지만, 국민의힘과 재계에서는 “산업 생태계를 흔드는 악법”이라며 반발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은 재석 174명 중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민주당 주도로 처리됐다.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 및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 이를테면 원청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노동쟁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21대 국회 들어 노란봉투법은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 재판을 계기로 발의됐다. 민주당은 앞서 소관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장기간 계류되자 본회의로 직회부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노란봉투법 처리 후 기자들과 만나 “노란봉투법은 노동계 숙원사업”이라며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의 단결권과 파업권이 보장된, 그래서 우리 노동자의 삶의 질이 한 단계 올라가는 중요한 법이 통과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자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법이 통과됐다고 생각한다”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노란봉투법은 파업을 유도하는 법이나 노조를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기본권, 어떤 분들에겐 삶의 벼랑 끝에 있는 분들에게 손을 내미는 인권법안”이라고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는 “그런 측면에서 또다시 윤석열 대통령이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며 “정부·여당이 열린 자세로 임해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정의당도 이날 노란봉투법이 본회의서 통과된 것을 환영하며 정부·여당을 향해 “꼼수 거부권 행사는 포기하라”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노란봉투법에 대해 “2003년 65억 손배 가압류에 저항한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분신 이후 20년만”이라며 “더 이상 기다릴 수도, 미뤄서도 안 된다”면서 법안 통과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날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반발하며 집당 퇴장하는 등 표결에 불참했다.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등에 맞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를 준비했지만, 막판에 이를 취소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후 기자들에게 “우리 당은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방송통신위원장을 탄핵해 국가기관인 방통위의 기능을 장시간 무력화하겠다는 (민주당의) 나쁜 정치적 의도를 막기 위해서는 필리버스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국민들이 이해해주시고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노란봉투법 입법 중단을 촉구해왔던 재계는 이날 민주당 주도로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향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전날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국회 소통관에서 노란봉투법 입법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경제6단체는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산업현장은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기업은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며 “이러한 호소에도 야당이 다수의 힘을 앞세워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상황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개정안이 사용자의 개념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라고 정의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사용자 범위가 무분별하게 확대돼 당사자가 아닌 원청업체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고, 하청업체가 이 사용자를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할 경우 결국 기업활동을 영위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들은 “부당 해고 등 사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물론 투자 결정과 같은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노조가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어 노사분규와 불법행위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은 노사관계를 파탄 내고, 산업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어 미래세대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국회에서 강행 처리될 경우 대통령에게 노동조합법 개정안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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