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개정안, ‘노조 손배책임’ 제한하고 ‘사용자·쟁의행위’ 범위 넓혀
노동계·야당 “노동권 보호” vs 경영계·여당 “산업현장 대혼란”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9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와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노조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을 막고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이라는 노동계·야당과,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산업현장에 혼란이 야기된다며 반대하는 경영계·정부·여당의 첨예한 갈등 끝에 마침내 통과됐다.
여당이 이미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건의를 예고한 가운데, 노정·노사간의 격렬한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사용자 범위·손해배상 책임’ 어디까지인지가 쟁점
이번에 통과된 노란봉투법은 구체적으로 노조법 제2조와 제3조 개정안이다.
2014년 법원이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 대해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하자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노란 봉투에 담아 전달한 데서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노조법 2조는 근로자, 사용자, 노동쟁의 등에 대한 정의를 담고 있는데,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라고 규정했다.
개정안은 여기에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는 사용자의 범위를 ‘원청업체’ 등으로 넓힌다는 뜻이다.
하청업체 등 간접고용 근로자도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있도록 해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또 ‘노동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확대해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는 내용도 담았다.
3조는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에 대한 내용이다.
현행법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적법한’ 쟁의행위 등엔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 것인데, 개정안은 여기에 법원이 ‘적법하지 않은’ 행위로 보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우선 법원이 “배상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불법 파업 등으로 손배 판결이 내려질 때 각자의 책임 범위를 산정하지 않은 채, 조합원 모두가 거액의 손해발생액을 부담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여기에 “신원보증인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제3자인 신원보증인에게도 손배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노동계가 꾸준히 개정을 요구해온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19, 20대 국회 때도 발의됐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파업 후 47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것을 계기로 논의에 탄력이 붙었다.
◇ 노사·여야 입장 첨예…거부권 전망 속 노동계 투쟁 거셀 듯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노사정과 여야의 입장은 극명히 엇갈려왔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을 ‘손배폭탄 방지법’으로 부르며 과도하고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으로 노조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고,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노란봉투법이 “이윤은 독점하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진짜 사장’의 탐욕을 제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며, 무권리상태에 방치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시급한 민생현안”이라며 조속한 처리를 촉구해왔다.
대법원이 이미 2010년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라고 인정하는 등 최근의 판례들에 비춰봐도 노조법이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란봉투법이 불법 파업을 조장할 것이란 경영계 등의 주장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오히려 교섭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반면 경영계는 사용자나 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손배 제한이 산업현장에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용자 범위가 확대돼 하청업체가 원청 사용자를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하면 결국 기업활동을 영위할 수 없게 되며, 투자 결정과 같은 경영상 판단도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단체는 전날 공동성명을 내고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노조가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어 노사분규와 불법행위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며 “노사관계를 파탄 내고, 산업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어 미래세대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노란봉투법은 산업현장에 막대한 혼란 야기 등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 역시 “쟁의행위 범위 확대가 파업만능주의로 귀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여당은 노란봉투법 통과 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윤 대통령이 양곡법, 간호법에 이어 세 번째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은 정부로 이송된 법률안을 15일 이내에 서명·공포하거나, 이의가 있을 시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해야 한다.
거부권 행사를 저지하기 위한 노동계의 투쟁도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오는 11일 각각 서울 여의도와 서대문사거리에서 수십만 명이 모이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예정인데, 일단 이 자리에서 노조법 2·3조 공포 요구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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