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임소연 인턴기자 =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난지한강공원, 시민들은 빨간 열매와 붉게 물든 잎이 달린 남천 옆에서 사진 찍으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옆에는 ‘세븐틴 숲에서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누구나 편하게 쉬었다 가실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바로 지난달 들어선 아이돌그룹 ‘세븐틴숲’이다. 팬들이 수목을 기증하고 스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스타숲’ 중 하나다.
지난 4월 방탄소년단(BTS) 숲 1호를 시작으로 NCT 도영, 아스트로 문빈, 가수 임영웅, 배우 박서함 등 올해 난지한강공원에만 10개의 스타숲이 조성됐다. 이촌, 잠실, 광나루 등 한강공원에는 이미 9개의 스타숲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는 한강 전역에 흩어져 있는 스타숲을 한 곳에 모아 관광명소로 육성하기 위해 난지한강공원에 축구장 1.4배 크기의 부지를 할애했다.
스타숲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K팝팬도 늘어나고 있다. 같은 날 서울 성동구 서울숲 ‘제이홉정원’에서 만난 파라과이 출신 기자 데버라(36) 씨는 “트위터로 알게 돼 처음 방문했는데 주변 경치가 아름답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소 같다”며 “방탄소년단 제이홉의 팬으로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가수 겸 모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미국인 트루디 헨더슨(27) 씨 역시 “제이홉은 군대에 있지만 이곳에서 그의 음악적 흔적을 느낄 수 있다”며 “같은 아티스트로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스타숲은 지난 2010년대 초중반부터 국내외에 속속 생겨났다. 연예인의 생일, 데뷔일 등 기념일에 고가의 선물을 하는 일명 ‘조공’ 대신 환경친화적 사회공헌활동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상당수는 무관심 속에 사실상 방치돼 오히려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엔 요즘엔 숲을 일구는 데 그치지 않고 ‘최애’를 아끼듯 함께 돌보는 것이 트렌드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동구 광나루한강공원에 ‘하성운과늘함께숲’을 꾸민 가수 하성운 서포터스 ‘여운’이 대표적이다. 당시 하성운의 생일을 맞아 왕벚나무와 목수국을 심었던 이들은 지난 4일에는 나무수국 20그루를 추가로 식재했다. 운영진이 매달 한차례 제초 작업, 주변 청소 등을 하고, 팬들이 수시로 들러 쓰레기를 줍는 식이다. 여운 측은 “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게 당초 목적이었기 때문에 숲을 보살피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K팝팬 상당수가 스타숲 가꾸기에 동참하고 있다. 관련 모니터링을 맡고 있는 조윤환 서울환경연합 모금팀장은 “스타숲을 정모와 같은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하고, 그때마다 물주기 등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최영준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한강여가사업부 자연성회복과장은 “우리가 기본적인 관리를 담당하고 있지만 팬들이 연락해올 경우 장비와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플로깅’ 활동 등을 원하는 팬클럽들이 꽤 있어 이들을 위한 정기 프로그램을 마련하려 한다는 것이 서울시 측 입장이다.
스타숲을 조성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올해 난지한강공원에 새로 탄생한 숲들은 음원 사이트 멜론의 친환경 프로젝트 ‘숲; 트리밍’의 일환이다. 정기결제권을 이용하는 동안 응원하는 가수의 이름을 선택하면 매월 결제금액의 2%가 쌓이고, 적립금이 2천만원에 도달하면 서울환경연합에 기부돼 서울 시내에 해당 가수의 숲이 만들어지는 구조다.
한민우 멜론마케팅그룹장은 “고객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숲을 만들고, 우리는 음악사업자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밝혔다. 기업이 참여함으로써 좀 더 지속적,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연말까지 두 개의 스타숲이 더 생겨날 전망이다.
스타숲은 나아가 한국의 성숙한 팬덤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영대 문화평론가는 “기획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팬 문화를 진화시키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사례”라고 짚었다. 김 평론가는 “한류를 이끄는 스타들이 평소 선한 영향력이 담긴 메시지를 꾸준히 발표해왔고, 팬들은 실천을 통해 이를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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