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로 달 궤도에 진입, 달의 뒷면을 목격하고 돌아온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의 선장인 미국 우주 비행사 프랭크 보먼이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9일(현지시간) 미 우주항공국(NASA)이 발표했다.
NASA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보먼의 가족 대변인인 짐 매카시는 보먼이 지난 7일 몬태나주 빌링스 의료센터에서 뇌졸중으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고 이날 밝혔다. 보먼은 2016년 미 우주 비행사인 존 글렌의 사망 이후 미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우주 비행사였다.
“달에서 본 지구,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순간”
보먼은 1968년 12월 인류 최초로 달의 궤도에 진입한 아폴로 8호의 선장이었다. 당시 조종사였던 제임스 로벨, 윌리엄 앤더스와 함께 지구를 떠난 보먼은 편도로 37만8000㎞를 날아가 달 궤도에 안착, 10바퀴를 돌면서 달 뒷면까지 살펴본 뒤 지구로 돌아왔다.
보먼과 로벨, 앤더스는 196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달의 궤도를 돌았고 당시 달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생중계로 전했으며, 창세기의 10구절을 돌아가면서 읽었다. 아폴로 8호의 사진가였던 앤더스는 NASA가 지급한 카메라로 이 장면을 컬러로 남겨뒀다. 달 표면 위로 지구가 떠 오르는 장면을 찍은 이 사진을 두고 ‘지구돋이(Earthrise)’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먼은 지구에 돌아온 이후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이었다”고 이 때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구가) 우주 공간에서 색을 가진 유일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검은색 또는 흰색이었는데 지구만은 아니었다”며 “지구는 대부분 부드럽고 평화로운 파란색이었고 대륙은 분홍빛을 띤 갈색으로 윤곽이 잡혔고 항상 거대한 지구 위에 떠 있는 긴 솜털처럼 흰 구름이 떠다녔다”고 말했다.
당초 아폴로 8호의 임무는 달이 아닌 지구 궤도를 도는 것이었지만, 당시 소련이 달 궤도를 도는 유인 우주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NASA가 계획을 바꿨다고 WP는 설명했다. WP는 “지구의 중력을 떠나 처음으로 달의 궤도에 들어가는 첫 인간이 되는 것은 대담한 모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아폴로 8호의 이러한 성과는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달의 표면에 착륙, 닐 암스트롱이 인류의 첫 발자취를 남기는 시작점이 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암스트롱은 아폴로 8호의 백업 작업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육사 출신 보먼, 우주 비행사 퇴직 후 미 항공사 CEO 맡아
1928년생인 보먼은 1950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졸업 이후 공군에 입대했다.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에서 2년간 군 생활을 했으며 귀국해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항공 공학 석사 학위를 받아 기술 담당 강사로 웨스트포인트에 복귀했다.
1960년 보먼은 캘리포니아 에드워드 공군 기지에서 항공기 성능을 시험하는 테스트 파일럿으로 참가해 NASA의 파일럿 프로그램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후 1962년 우주 비행사로 합류, 1968년 아폴로 8호의 수장으로 발탁됐다.
아폴로 8호 비행을 마치고 1970년 대령으로 공군에서 퇴직한 보먼은 미국 기업에 뛰어들었다.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미국 항공사 이스턴항공에 들어가 수석 부사장을 거쳐 1975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보먼은 CEO로서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나섰고 첫해에는 수익을 거두며 경영 개선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스턴항공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4억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했고, 노조와도 충돌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86년 보먼은 이스턴항공을 텍사스항공에 매각하고 사임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매각 직후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안겨 울었다면서 “내 생애 처음으로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인 수전은 2021년 먼저 사망했고, 아들 2명과 손주 4명, 증손주 6명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NASA는 보먼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오늘날 우리는 NASA의 최고 중 하나였던 사람을 기억한다. 보먼은 진정한 미국의 영웅이었다”며 “그가 항공·탐사에 평생 쏟아부은 사랑에 필적할 만한 것은 오직 그의 아내인 수전을 향한 그의 사랑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프랭크는 ‘탐험이야말로 진정한 인간 정신의 본질’이라고 말해 인류를 단합하는 탐사의 힘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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