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주도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또다시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정국에 들어설 수 있단 예측이 나온다.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지난 4, 5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에 이은 세 번째다.
당초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이를 전격 철회하고 본회의 종료를 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이내 표결을 거치지 않으면 표기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날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은 국민의힘이 표결에 반발해 집단 퇴장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여당이 반대한 법안의 야당 주도 처리, 그리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 상반기에도 두 차례 연출된 그림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 지난 5월 간호법에 각각 거부권을 행사했다. 다시 국회로 돌아온 이들 법안은 폐기됐다. 이런 ‘거부권 정국’은 여야 협치가 실종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0일 SBS 라디오에서 “총선을 앞두고 거부권이 계속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지난번 양곡관리법도 그렇고 야당이 거부권을 여러 번 행사하게 했다. 대통령을 불통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전술”이라고 비판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대통령 지금 소통 안 한다, 독단적이다, 거부권 남발한다 이런 이미지를 자꾸 씌우는데, 이런 불통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저희는 이 법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심도 있는 논의를 하자고 권한쟁의심판까지 재개하면서 절차상의 문제를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이렇게 법을 강행해서 밀어붙였다”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하나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통해서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게 하는 것”이라며 “또 노란봉투법의 경우에는 그동안 민주노총이 계속 요구해 왔기 때문에 거부권이 행사되든 아니든 그동안 밀린 숙제를 하기 위해 이와 같이 무리하게 예산 심사를 뒤로 미뤄가면서 통과시킨 것”이라고 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지금 이 법의 문제점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필리버스터를 하려고 했었다가 결국 어제 하지 못했는데,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기 전에 국민들을 설득하고 알리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민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면서 본회의를 추가로 열어서라도 탄핵안을 처리하는 것이 바르다고 보고 있다. 강선우 대변인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물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정당한, 행사할 수 있는 권한 중의 하나이지만, 본인 마음대로 행사하라고 주어진 권한이 아니다”라며 “지난번 간호법도 공감대가 없어서, 필요성이 적어서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한 게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여야 협치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는 “민주당은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공론화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국민의힘이 거기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간호법의 경우에도 공청회 과정을 다 거쳤고 대안을 가지고 오라고도 이야기했지만, 국민의힘은 이를 하지 않고 끝에 가서 반대하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간다”고 비판했다.
강 대변인은 “민주당도 국민들께서 더 상세히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데 국민의힘이 거부하면 민주당이 어떻게 할 수 없지 않나”라고 했다.
박주민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여당이 필리버스터 하겠다고 했다가 안 하고 통과시켜준 법을 대통령이 갑자기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사실 답답하다”며 “노란봉투법은 그동안 생성·축적돼온 판례를 반영한 정도의 법안이지, 굉장히 특별하고 특이한 법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와 민주당은 본회의를 추가로 열어서라도 탄핵안을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있다.
박 의원은 “탄핵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저희의 판단으로는 불법적인 행위를 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처리되는 것이 맞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오늘이라도 본회의를 추가로 열어서 처리하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을 김진표 국회의장께 전달했고 오늘도 계속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에 따르면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11월30일, 12월1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처리하는 것이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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