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 빨강·파랑·초록의 색깔이 다른 자율주행차 3대가 서킷 위에 서 있다. 초록차가 추월을 하려는데 빨간차가 막아선다. 뒤차가 다시 우회해서 나가려 하니 앞 차가 다시 또 막아선다.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보는 사람은 조마조마하다. 혹시 부딪히는 건 아닐까. 왜냐하면 두 차는 사람이 타지 않은 자율주행차이기 때문이다.
차 안엔 아무도 없다. 대신 사전에 코딩해놓은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인다. 운전석은 텅 비어있지만 핸들은 알아서 방향을 전환하고 곡선 구간에선 브레이크를 스스로 밟아 속도를 줄인다. 알고리즘은 실제 레이싱 선수와 비슷한 랩타임 기록을 낸다. 기록에 기복도 없다. 알고리즘은 사람처럼 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마지막 미션은 정해진 구간에 맞춰 정차하는 것. 선두를 달리던 차량은 완벽히 미션을 완수했다. 2등 차량은 앞에 서 있는 1등차를 감지해 정확한 구역에 정차를 해야 하기에 한층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다. 2등 차량까지 완벽히 정차에 성공하자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0년부터 국내 최대 규모의 자율주행 경진대회 ‘자율주행 챌린지’를 개최해오고 있다. 이날 용인 스피드웨이에서는 세계 최초로 양산차 기반의 무인 자율주행 레이싱 경기가 열렸다. 3대 이상의 양산차 기반 자율주행차가 서킷에서 경주를 펼친 것은 이번 대회가 유일하다.
이날 경기는 아이오닉 5 기반의 3대의 자율주행차가 동시에 출발해 2.7㎞의 서킷 10바퀴를 도는 코스로 진행됐다. 각 차량은 시속 180km 이상까지 달릴 수 있으나 네 번째 랩까지는 속도 제한(시속 100km 이하)을 뒀다. 설정된 제한속도를 초과하거나 추월 규정, 주차 규정을 위반한 차량은 총 주행시간에 페널티를 준다.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페널티를 받지 않고 서킷 주행을 완주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건국대학교, 인하대학교, 카이스트 등 3개 팀이 최종 결승전에 올랐다. 3대의 차량이 한 지점에서 만나 추월을 시도하는 아찔한 장면도 연출됐다. 하지만 인하대의 자율주행차량이 코스를 이탈해 실격처리되면서 건국대와 카이스트 2대의 자율주행차량만 완주에 성공했다. 최종 우승은 1분49초의 베스트랩 기록을 세운 건국대 AutoKU-R팀에 돌아갔다. 2위는 2분6초의 카이스트 EureCar-R팀이었다.
이번 대회는 세계 최초의 양산차 기반 자율주행 레이싱인 만큼 준비 과정도 독특했다. 현대차그룹은 본선 진출 팀에게 각각 아이오닉 5 1대와 연구비 최대 5000만원을 지급했다. 차량은 자율주행시스템 구동을 위한 개조 작업을 거쳐 각 팀에 제공됐다.
참가팀은 각자 연구 개발한 알고리즘에 따라 라이다·레이더·카메라 등 센서류를 최적의 위치에 설치해 자율주행차를 제작했다. 3차례의 연습 주행을 통해 고속 자율주행에 필요한 기술을 고도화하는 과정도 거쳤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기아 연구원들이 직접 자율주행 차량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지원했다. 현대차그룹은 기술 교류회와 세미나를 통해 참가팀에게 차량 교육, 하드웨어 개조·점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개발 가이드를 제공했다.
다수 차량의 동시 고속 자율주행이라는 전례 없는 대회인 만큼 모든 참가 차량은 서킷에 오르기 전 자율주행 기본 성능을 점검하는 별도 절차를 거쳤다. 장애물 회피와 주차 위치 준수 시나리오 등을 완벽하게 수행한 차량만이 최종 참가 자격을 부여받았다.
김용화현대차·기아 CTO(사장)는 “이번 대회는 기존 대회와 달리 고속에서의 인지·판단·제어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도 선행 기술 경연의 장을 마련하고 대학이 선도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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