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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너는 나에게 ‘점자’ 같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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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최수연 변호사가 우영우에게 “나는 너에게 뭐야”라고 묻자 “너는 나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람이야”라고 답하는. 그는 자폐증을 가진 우영우를 알게 모르게 계속 도왔고 그래서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의 표정은 고마움과 애틋함이 덮인, 내가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은 사람인가 하는 미안함이 함께 담긴 복잡한 것이 됐다.

며칠 전 ‘은설의 하루’를 쓴 12세 박은설 작가와 만났다. 강릉의 교육지원청에서 그와 함께하는 대담이 있었다. 그는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졌다. 글을 읽는 것이 어렵고 쓰는 것은 더욱 어렵겠으나 자신의 삶을 책 한 권 분량으로 써냈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궁금했는데 그는 점자가 있어서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앞엔 한소네라는, 점자를 이용한 작은 키보드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멜로디언 같은 건반에 점자가 새겨진, 그런 물건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점자를 만든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고도 했다. 30여명의 청중들은 모두 그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고맙다’였다. 선생님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자신을 도와주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는 고맙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자신을 돕는 사람들은 한 단어로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점자, 그 사람들은 저에게 점자예요.” 그 순간 그를 바라보던 몇몇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울 것처럼 변했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가 나의 표정을 볼 수 없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내가 바라본 객석의 사람들은 그때 마치 점자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앉아 있어 저마다 이룬 그 부호는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내가, 우리가 저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어도 괜찮은 건가, 그래도 될 만큼 좋은 사람인가, 하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그런 표정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언어가 되는 사람들이 곁에 많이 있어서 이 어린 작가는 이처럼 단단히 잘 살아올 수 있었구나. 고맙다고 말하며, 당신들이 나의 언어라고 말하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잘 추스르고 다시 박은설 작가에게 물었다. 점자가 있어서 좋은 물건은 무엇이고 점자가 없어서 불편한 물건은 무엇인지. 그는 점자가 붙은 컵라면이 있어서 자신이 못 먹는 매운맛 라면을 먹지 않을 수 있어서 그게 고맙다고 했다. 아, 컵라면에 점자가 있구나. 그러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고 해서 나는 이제 점자가 붙은 컵라면만 구매하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컵라면이 점자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박은설 작가는 다시 점자가 없어서 불편한 물건이라면 표지판이라고 했다. 무언가를 알리는 데는 점자가 꼭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할 때 은설이의 마음이 돼 여기에 점자가 있는지 한 번쯤 살필 듯하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게 있는 곳을 방문하고 물건을 구매하려고 노력해야지. 그 이전에 내가 누군가의 점자가 되고프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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