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 중으로 문자 남깁니다. 신청하신 상품 승인되었습니다.
지난달 13일 자영업자 A씨가 받은 문자입니다. 대출 신청을 한 적은 없었지만 마침 장사가 어려워 생활고를 겪던 그는 절박한 마음에 카카오톡을 통해 상담 문의를 했습니다.
스스로를 ‘이 팀장’이라고 소개한 발신자는 A씨에게 연 금리 9.2%에 최대 3000만 원까지 대출 가능한 상품을 소개합니다. 그는 해당 상품이 ‘구매자금 대출’에 해당한다며 “거래 내역만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A씨는 반신반의했지만 한푼이 간절한 처지라 이 팀장이 건넨 달콤한 유혹을 저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팀장은 해당 대출이 일명 사업자 작업 대출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A씨에게 해외 송금이 가능한 앱을 설치하고 해외 계좌로 돈을 송금하면 거래 내역이 남아 대출이 가능하다고 알려주는데요.
이 팀장은 앱 회원 가입을 하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넘겨주면 대출은 알아서 승인이 된다며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고 A씨를 안심시키는데요. 해당 해외 송금 앱은 돈을 송금할 때 OTP 번호가 필요 없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A씨는 이 팀장의 지시대로 해외 송금 앱에 회원가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A씨의 통장에는 ‘안경점 B씨’가 송금한 1000만원이 입금됐습니다. A씨는 이 팀장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고 이 팀장은 “해외 송금 앱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B씨가 보낸 1000만원 가량이 해외로 송금이 안 되고 있으니 우선 C씨라는 사람의 계좌로 돈을 보내달라”고 말합니다.
A씨는 불안한 마음에 이 팀장에게 몇 번이고 “피싱 아닌 게 맞느냐”고 따져 물었찌만 그럴 때마다 이 팀장은 “절대 그럴 일 없다”며 A씨를 안심시켰습니다. 이후 A씨는 이 팀장의 안내대로 C씨의 계좌에 1000만 원을 입금합니다. 그리고 그날 이 팀장과의 연락이 두절됩니다.
사실 A씨는 B씨로부터 받은 돈을 C씨에게 전달한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금전 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A씨 통장은 B씨의 돈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 위한 ‘대포 통장’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피해 사실을 눈치챈 B씨는 A씨 계좌를 대상으로 금융 피해 사기 신고를 접수했고 이후 A씨 계좌의 입출금이 정지됩니다.
이후 C씨 역시 보이스피싱 사기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C씨는 경찰 조사에서 “카드사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했는데 직원이 또 다른 최 모씨라는 사람에게 약 3000만원(B씨 돈 1000만원 포함)을 보내라고 했다”며 “나중에 보이스피싱 사기인 것을 알게 됐다”고 토로했습니다.
A씨는 경찰서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 팀장을 고소하고자 했지만 실질적인 피해금이 없어 신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A씨는 B씨에게 500만원을 송금해주기로 하고 계좌 정지를 해제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A씨와 B씨 두 사람이 각각 500만원씩 손해를 본 셈입니다.
최근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노린 대포통장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대출이 필요한 자영업자들에게 대출을 알선해주겠다고 접근해 대포통장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건데요.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거래내역이 있어야 한다며 다른 자영업자의 통장으로 돈을 송금하도록 지시하고 이렇게 입금을 받은 자영업자로 하여금 다시 해당 금액을 또다른 자영업자의 통장으로 송금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송금이 여러 차례 이뤄지다 보니 추적이 힘들어질 뿐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도 어려워집니다.
◇10년간 대포통장 피해액 2조원…신고법은?
대포통장이란 통장을 개설한 사람과 실제 사용자가 다른 비정상적인 통장입니다. 금융거래의 경로 추적을 피할 수 있어 각종 범죄에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고 탈세나 스미싱 등에도 악용됩니다. 특히 전화를 통해 돈을 입금하도록 한 후 사라지는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과 경찰청이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 등 25개 금융사가 2012년부터 2022년 6월까지 지급 정지한 대포통장은 38만8501건에 달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대포통장으로 인한 피해액은 2조985억원에 달했고 이 가운데 5대 시중은행 이용자 피해액만 1조3266억원에 달했습니다. 전체의 63.2% 수준인데요.
반면 피해 환급액은 5856억원(환급률 30.31%)에 그쳤습니다. 대포통장 피해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환급절차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환급을 결정하는 주체가 은행이 아닌 금융당국, 경찰 등 정부기관인 점도 환급절차가 길어지는 또다른 이유입니다.
대포통장 피해 발생시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3조에 따라 피해자가 피해구제를 신청하면 은행은 대상 계좌에 지급정지를 걸 수 있습니다. 이후 금융감독원에 채권소멸절차 게시를 요청하는데요. 대포통장 명의자가 2달 이내에 사기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명해 지급정지를 해지하는 경우 환급 프로세스는 정지되고 금융감독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대포통장 명의자가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 경우 채권이 소멸되는데요. 이 경우 금융감독원에서 채권 소멸일로부터 14일 이내에 환급금액을 결정하고 은행에 공지하면 은행은 금액을 최종적으로 피해자에게 환급하는 구조입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 약칭: 통신사기피해환급법 )
제3조(피해구제의 신청) ① 피해자는 피해금을 송금ㆍ이체한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 또는 사기이용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에 대하여 사기이용계좌의 지급정지 등 전기통신금융사기의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라 피해구제의 신청을 받은 금융회사는 다른 금융회사의 사기이용계좌로 피해금이 송금ㆍ이체된 경우 해당 금융회사에 대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급정지를 요청하여야 한다.
대포통장 피해는 무엇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합니다. 사기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명하기도 어렵고 만약 지급정지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대포통장 명의인이 여러 명으로 연속된 경우 보상 대상과 금액을 지정하는 절차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한 금융 전문가는 “금융당국이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포통장 피해 근절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며 “금융사에 대한 내부 통제 강화 등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통장 대여하는 행위만으로도 처벌
자신의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사용될 수 있게 예금통장이나 현금카드(체크카드 포함) 등을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하는 행위 역시 형사처벌 대상인데요. 이는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의3에 위반되는 위법행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의3(계좌정보의 사용 및 관리) 누구든지 계좌와 관련된 정보를 사용 및 관리함에 있어서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계좌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받거나 제공하는 행위 또는 보관ㆍ전달ㆍ유통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지난달 31일에는 수도권을 거점으로 수년간 70여개의 유령법인을 설립해 범죄단체 조직에 대포통장을 유통한 조직원들이 무더기로 검거되기도 했는데요. 이들은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대포통장을 유통시킬 목적으로 유령법인 73개를 설립한 뒤 209개의 금융계좌를 유통시킨 혐의를 받습니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투자리딩, 불법도박 사이트 등 범죄 조직 단체에 대포통장을 유통시킨 뒤 관리까지 해주며 자금 세탁도 도맡아 처리했는데요. 이들은 계좌 1개당 매월 100만~350만원의 관리 수수료를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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