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법원이 ‘신림로 등산로 성폭행 살인사건’의 범인 최윤종의 국선 변호인을 직권으로 교체해 시선을 모았습니다.
이번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정진아)는 최씨의 변호인이던 A국선변호사의 선정을 취소하고 B국선변호사를 새 변호인으로 선정했습니다.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 교체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요.
법원은 사선변호사 선임이 어려운 피고인에 대해 국선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합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변호인 선임을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는 형사소송규칙에 기술돼 있는데요. 형사소송규칙 제18조는 △국선변호인이 그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아니할 때 △피고인(또는 피의자)의 국선변호인 변경 신청이 상당하다고 인정될 때 △그밖에 국선변호인 선정 결정을 취소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등에는 국선변호인의 선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위 사유에 따라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했을 때는 지체없이 그 사실을 해당 국선변호인과 피고인(또는 피의자)에게 알려야 합니다.
법원이 최윤종의 국선변호인을 교체한 건 위 사유 중 직무 불성실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처음 최씨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된 A변호사는 첫 공판이 열리기 전까지 최씨를 단 한차례도 접견하지 않고 최씨 사건 수사기록을 열람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첫 공판에서도 이같은 변호인의 자세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고 하는데요. 피고인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돼야 하는데 변호인이 그에 합당한 업무를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국선변호인의 불성실을 이유로 재판부가 직권으로 변호인 선정을 취소하는 건 실제 소송 과정에서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하는데요. 국선변호인 선정이 취소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피고인이 사선 변호인을 선정해 국선변호인이 필요하지 않아지거나 피고인이 국선변호인의 교체를 요구할 때, 국선변호사가 피고인의 협박 등을 이유로 사임을 신청할 때 등입니다.
대한민국헌법
제12조 ④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변호인이 반드시 필요한 사건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입니다. 헌법에 따라 우리 국민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특히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는 국가가 변호인을 선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변호인없이 재판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1인 소송의 경우인데요. 자기가 변호인이 되는 경우죠. 형사사건도 변호인 없는 1인 소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건이 존재합니다. 형사소송법은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 진행이 불가능한 사건의 유형을 정하고 있는데요. 이를 ‘필요적 변호’ 사건이라고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82조는 필요적 변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다음과 같은 경우 변호인 없이는 재판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이 구속된 때 △피고인이 미성년자일 때 △피고인이 70세 이상 고령일 때 △피고인이 듣거나 말하는 데 장애가 있을 때 △피고인에게 심신장애가 있을 때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등입니다.
이런 경우 피고인이 사선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임하게 됩니다. 바로 국선변호인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82조(필요적 변호) 제33조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건 및 같은 조 제2항ㆍ제3항의 규정에 따라 변호인이 선정된 사건에 관하여는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 단, 판결만을 선고할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제283조(국선변호인) 제282조 본문의 경우 변호인이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는 법원은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
제33조(국선변호인)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변호인이 없는 때에는 법원은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
1. 피고인이 구속된 때
2. 피고인이 미성년자인 때
3. 피고인이 70세 이상인 때
4. 피고인이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인 때
5. 피고인이 심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때
6.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이 사건 못 맡겠어요”…국선변호인의 사임
그렇다면 이렇게 선임된 국선변호인은 반드시 그 사건을 맡아야 할까요? 국선변호인 역시 맡고 싶지 않은 사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사회적 지탄과 공분의 대상이 된 사건을 맡게 된 국선변호인이 기피 의사를 밝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요.
고 최희석씨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이른바 경비원 갑질 사건의 피고인 C씨는 잇달은 변호인의 사임으로 또다른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는데요. C씨가 직접 선임했던 사선변호인이 사임한 데 이어 법원이 지정한 국선변호인도 갑작스레 사임했습니다. 이 일로 두고 국선변호인이 C씨 변호를 거부했다는 후문이 돌았는데요. 단순히 피고인이 싫다는 이유로 국선변호인이 선임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법에 정해진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국선변호인의 사임은 가능합니다.
실제 진주아파트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국선변호인 D씨는 재판 진행 중 피고인 안인득을 변호하기 싫다는 의사를 피력해 논란이 됐습니다. D씨는 최후 변론 도중 “이런 살인마(안인득)을 변호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다”며 심적 고충을 토로하는데요. 이에 안인득이 거세게 반발하자 다시 안씨를 변호하기 싫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의사 표현에도 불구하고 D씨는 사건을 맡아야 했습니다.
형사소송규칙은 국선변호인이 사임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국선변호인은 △질병 또는 장기여행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곤란할 때 △피고인(또는 피의자)으로부터 폭행, 협박, 모욕을 당해 신뢰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피고인(또는 피의자)으로부터 부정한 행위를 종용받았을 때 △기타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등에 한해 법원의 허가를 얻어 사임할 수 있습니다.
국선변호인이 사임하면 법원은 지체 없이 새로운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야 합니다. 이때 후임 국선변호인도 사건을 거부할 수 있는데요. 법원은 거절하지 않는 변호인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거듭해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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