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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
*1887년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도스 법(토지할당법)은 부족 공동소유의 땅을 개인에게 할당함으로써 부족공동체를 해체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주법을 따르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자족형 자영농을 육성해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정부지출 부담을 경감하고, 할당하고 남은 땅은 백인 정착민에게 나눠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최초 입안자인 도스 상원의원은 비교적 아메리카 원주민 친화적인 인물이었다. 백인들로 구성된 아메리카 원주민 후원단체를 이끄는 등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명화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 예컨대 이 법을 기초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성인 남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는 경우에만 토지를 개인에게 할당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도스의 의견은 무시됐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도스 법의 숨겨진 의도를 모를 리 없었으나 모든 걸 잃어버리고 오로지 백인들의 자비에만 의존하는 처지였기에 저항하기 어려웠다. 워크 내무부 장관은 1926년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 브루킹스연구소 앞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정책의 집행과정과 원주민 생활실태에 관한 조사 연구를 의뢰했다. 보고서는 1928년에 완료됐다. 연구 책임자의 이름을 따서 ‘메리엠 보고서’라고 불렸다. 이 보고서는 토지 할당 정책이 불법적으로 원주민 땅을 가로채는 데에 악용되는 점을 강조했다. 의회는 격렬한 논쟁을 거친 끝에 1934년 ‘인디언 재조직법’을 제정했다. 이것으로 도스 법의 생명은 끝났다.
*메리엠 보고서의 공식 명칭은 ‘인디언 관리상의 문제점’이다. 메리엠을 포함한 각계 전문가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건강, 경제, 교육 등 생활실태를 심층 분석해 문제점을 도출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847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는 도스 법이 아메리카 원주민 궁핍을 앞당겼으며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를 도외시한 기숙학교 제도 역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메리엠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의 평균수명은 매우 짧고, 영아사망률은 매우 높았다. 결핵, 드라코마 등 전염병이 만연했으나 의료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설사 있더라도 의사 등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근본적 원인인 식량 공급 부족이 도스 법에 따른 잘못된 토지 할당 정책에서 비롯한다고 봤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할당받은 땅은 대체로 경작하기에 부적합했다. 숙련된 백인 농민이 겨우 생계를 유지할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경제정책이 바뀌는 점도 장기적 관점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경제를 어렵게 한다고 분석했다. 해결책으로는 교육을 첫손에 꼽았다. 격리 수용하는 기숙학교보다 부족민과의 생활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설파했다. 아울러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급식 불량, 열악한 위생 상태, 학생 노동력 의존, 획일적 교육내용 등 문제도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권고를 받아들이고 관련 예산을 증액했다. 그러나 도스 법은 1934년 인디언 재조직법이 제정될 때까지 지속됐다. 기숙학교 제도도 마땅한 대안이 나오지 않아 계속 유지됐다. 1970년대에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메리엠 보고서에 담긴 건의 사항은 크게 열한 가지였다. ▲도스 법 폐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자치기구 인정 ▲도스 법에 따른 토지분배 즉시 중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농업을 비롯한 각 사업에 자금 지원 ▲연방 범죄가 아닌 일반 범죄를 다스리기 위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자체의 사법기구 창설 ▲개인에 분배된 토지를 부족공동체에 환원 ▲직업훈련 실시 ▲완벽한 위생 시설과 보건국 설립 ▲교육제도 강화 ▲아메리카 원주민 전통 예술문화 발전을 추진시킬 기구 조성 ▲자유로운 선교활동 보장 등이다.
*메리엠 보고서 제출 뒤 마련된 인디언 재조직법은 도스 법 폐지와 원주민 부족 자치정부 재건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토지 할당으로 사라진 부족 토지를 회복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연방정부는 우선 개인에게 할당은 되었으나 미국 정부 앞으로 신탁되어 있던 땅을 부족 땅으로 되돌려놓았다. 나아가 땅을 사들여서 부족 땅으로 편입시키기도 했다. 그 덕에 원주민들은 인디언 재조직법 시행 뒤 20년 동안 충청남도 크기에 해당하는 8000㎢ 땅을 부족 소유로 확보할 수 있었다.
*1929년은 대공황이 시작된 해다. 미국 자본주의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중산층은 은행 파산으로 저축금을 잃고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없어 굶주렸다. 농민들도 농사를 중단해야 했다. 후버 대통령은 공황 구제책에 여념이 없었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 정책에 대한 모든 건의는 제동이 걸렸다. 다시 논의가 시작된 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뉴딜 정책으로 일반 국민, 농민, 노동자 등의 구제를 선언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1933년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지매매를 중단시켰고, 아메리카 원주민 생활 개선책의 하나로 교육 기회 증대 조치를 단행했다. 아울러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 재건을 위한 장치로 ‘인디언 뉴딜’이라고 불리는 인디언 재조직법을 제정하도록 의회에 요청했다.
*1941년 12월 일본 폭격기 105대가 진주만 미 태평양함대를 공격해 군함을 격침하고 항공기를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바로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의회는 거의 만장일치(반대 한 표)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전시체제로 전 국력을 전쟁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3만 명 이상이 징병 등록을 마쳤다. 2만4521명이 육군에, 2000여 명이 해군에 입대했다. 850여 명은 다른 군사 업무로 참전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용사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특히 400명 이상의 나바호 청년들은 특수암호교육을 받았다. 태평양지역에서 일본군이 해독하지 못하는 나바호어를 암호로 사용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예컨대 새끼 매는 급강하폭격기, 두 별은 육군 소장, 고래는 군함을 의미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병사들이 전후 지정 거주지로 돌아갔을 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별은 여전했다. 전선에서는 1등급 시민이었으나 집에 돌아오자 2등급 시민으로 전락했다. 특히 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투표권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최고의 영예를 안아도 처우는 마찬가지였다. 206명이 무공훈장을 받았으나 절망적인 귀향 생활을 보내야 했다. 대부분 미국 사회에 실망하고 환멸을 느꼈다.
*2차 세계대전 뒤 미국에는 애국주의, 반공 이데올로기, 매카시즘, 집단주의 분위기 등이 조성됐다. 이런 움직임은 모든 소수민족을 동화시켜 주류사회로 융합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아메리카 원주민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쟁으로 늘어난 빚을 갚기 위해 예산지출을 줄여야 했던 연방정부는 원주민에 대한 경제적 지원 규모를 감소해 재정적 부담을 축소해 나가려고 했다.
*기숙학교, 토지 할당 등 19세기 후반 동화 정책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주류사회로 편입시키기 위한 기초공사였다면, 20세기 중반 다시 시작된 동화 정책은 본공사쯤으로 비유된다. 그래서 정책 이름에도 동화가 아닌 말살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여기서 말살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국가의 완전 해체, 즉 부족 주권의 불인정을 뜻한다. 말살 정책 시행 이전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연방정부가 주권을 인정하는 부족국가 구성원으로서 미국 정부와는 보호자와 피보호자 관계에 있었다. 교육,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지원받았다. 말살 정책이 시행된 뒤에는 미국의 일반시민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가 생겼으나 더 이상의 특별 지원은 사라지게 됐다. 이는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폐해가 훨씬 더 많았다. 개선의 필요성이 여러 차례에 걸쳐 제기됐다. 다행히도 1960년대에 시작된 흑인 민권운동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행동주의 인권운동단체 등의 노력으로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국가의 자치권을 다시 인정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0년 7월 아메리카 원주민 문제에 관한 교서를 발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초의 아메리카인 인디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하고 고립된 소수민족이다. 고용, 소득, 교육, 건강의 수준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수백 년에 걸친 부정이 가져온 결과다. 유럽에서 온 식민자들과의 접촉이 개시된 이래 아메리카 인디언은 억압, 학대, 땅의 약취 그리고 모든 기회의 박탈 등 잔혹한 만행을 당해왔다. 인디언들의 요구에 따라 입안된 정책들도 본래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었던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인디언의 역사는 백인들에 의한 무자비한 침략, 조약 파기 그리고 반성 없는 긴 세월, 실망과 좌절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디언들은 최악의 장애에 직면해도 그것을 이겨내고 강인한 생명력과 창조성을 발휘해온 불멸의 역사를 만들었다. 인디언들은 우리나라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우리의 예술, 문화, 정신력, 역사 감각 그리고 사명감 등 사회 각 분야에 일조한 바가 크다. 연방정부는 일찍부터 인디언의 능력과 지혜를 인정하고 이를 강화하는 정책을 개발해왔다. 그러나 보다 올바른 정책의 수립이나 정책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인디언 자신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을 기초로 우리는 새로운 활동을 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무엇보다 결연히 과거를 청산하고 인디언의 장래가 그들의 행동과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수 있도록 전진적인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선언으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원주민에게 자결권을 인정한 최초의 연방 대통령이 됐다.
*미국 내무부 산하 인디언 담당국의 케빈 고버 국장은 2000년 9월 8일 창립 175주년 기념식에서 통렬한 자기 반성문을 발표했다.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1824년 3월에 먼로 대통령은 전쟁부 산하에 인디언 담당국을 설치했다. 창설된 지 175주년이 되는 올해는 새 1000년을 맞는 해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도전과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바람직하다. 미래를 내다보기에 앞서 우리가 과거에 한 일들을 되돌아보면 175주년은 축하보다 반성해야 할 때임을 알게 된다. 인디언국은 설립되면서부터 미국이 인디언의 뜻에 반하여 야망을 이루어 나가는 수단 역할을 했다. 인디언국의 첫 사명은 인디언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내쫓아 추방하는 일이었다. 1000마일이나 되는 눈물의 길을 따라 옮겨가는 동안에 수천 명의 인디언이 죽어갔다.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그곳에 전부터 살고 있던 인디언들은 엄청난 시련을 받게 됐다. 고의로 전염병을 퍼뜨리고 들소 떼를 박멸하고 인디언들의 심신을 피폐케 할 불순한 동기로 알코올을 제공하고 어린아이와 여자들마저 학살한 일들은 단순히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충돌 결과로 돌려 버리기에는 지은 죄가 너무 무겁다. 인디언국과 직원들은 그러한 파괴행위들을 막지 못했다. 그리하여 위대한 인디언 국가와 애국적인 전사들이 쓰러져갔다. 샌드크리크, 와시타강과 운디드니에서 발생한 불필요하고 폭력적인 학살 사건을 잊지 않을 것이다. 하나같이 인디언의 경제를 황폐화해 미국 정부에 의존케 만든 다음 인디언적인 모든 것을 파괴했다. 우리는 인디언의 말을 못 쓰게 하고 전통적인 종교를 금지하고 인디언의 정부 조직을 불법화하고 인디언임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들었다. 가장 나빴던 건 어린 학생들을 인디언 기숙학교에 수용해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학대한 사실이다. 수치와 공포와 분노의 외상은 세대를 이어 전해져 알코올과 마약중독, 가정폭력과 자살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인디언 문제의 원인은 우리가 제공했다. 인디언들의 궁핍, 무지, 질병은 우리 인디언 담당국의 책임이다. 나는 미국을 위해 발언하지도 않고 미국을 대신해 이야기하지도 않지만 1만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인디언국을 대표해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과거에 우리가 한 잘못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이러한 잘못과 그로 인한 결과를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과거를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인디언국의 대표로서 과거의 과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드릴 뿐이다. 이러한 과오는 지금 우리 직원들이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유산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강한 도덕적 의무를 지게 한다. 우리는 인디언의 희망과 번영을 위해 새롭게 중요한 일들을 시작하고자 한다. 인디언에 대한 혐오나 폭력이 발생할 시에 우리 국은 절대로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인디언들은 다른 인종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가정하에 이뤄지는 어떤 정책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인디언의 재산을 강탈해 가는 것을 다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인디언 부족의 권익을 거스르는 잘못된 지도자를 임명하지 않을 것이다. 인디언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인디언 묘사도 배격한다. 우리는 앞으로 결단코 인디언의 언어와 종교와 의식과 생활방식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어린아이들을 잡아가서 인디언임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이 지은 죄가 너무 무겁기에 용서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함께 치유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인디언 여러분이 고향으로 돌아가 여러분의 부족과 이야기할 때 이제 죽음의 시대는 끝났다고 알려 주고 자녀들에게는 수치와 공포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이야기해 주기 바란다. 젊은이들에게는 분노를 희망과 사랑으로 바꿀 것을 말해주길 바란다. 우리 다 함께 일곱 세대에 걸친 눈물을 닦아내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 미래의 지도자들이 인디언 담당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인디언국이 인디언의 나라를 위해 기쁨과 자유와 진보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축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자. 인디언국은 1824년 인디언과 백인 간의 전쟁 시기에 태어났지만 2000년 이후로는 인디언 번영의 도구로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2월 9일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사과 결의문’이 포함된 법안에 서명했다.
*연방정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미국 내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수는 약 240만 명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1% 정도다. 보유지는 불모의 땅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서부 대지의 초원이나 삼림 지대는 대부분 주립공원이나 연방정부가 지정한 국유림. 이 같은 비옥한 임야지대를 벗어나 있는 황량한 사력 지대가 주로 원주민의 보유지로 지정돼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약 50만 명이 살고 있다. 1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미국 내 모든 민족 집단 가운데 가장 가난하게 생활했고, 지금도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만성적인 실업은 지금도 50~60%에 이른다. 주거는 대부분 오두막집, 가건물, 폐기된 버스, 자동차 등이다. 대부분 식수 부족으로 강물이나 지하 샘물에 의존한다. 불결하고 비위생적 거주환경은 각종 치명적 질병을 유발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평균수명은 마흔다섯 살. 미국인 평균인 일흔두 살보다 스물일곱 살이나 낮다. 질병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매독, 폐병, 폐렴, 이질, 전염성 결막염 등이 만연한다. 1980년대부터는 에이즈도 확산한다. 이렇게 질병이 만연한데도 의료시설 부족으로 예방이나 치료는 온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보유지에서는 좀처럼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특히 연방정부에서 지원하는 생활보조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유는 원주민 행정당국의 부정부패. 자치기구인 부족평의회부터 어용단체로 전락해 공금횡령, 공급품 착복, 뇌물수수 등을 자행한다. 보유지를 떠나 도시나 농촌으로 이주한 아메리카 원주민도 빈곤한 생활을 하기는 매한가지. 현재 100만 명 이상이 대도시를 비롯한 일반사회의 빈민가에서 생활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는 재생의 몸부림이 가시화되고 있다. 구성원들이 연방정부나 외부 도움으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예컨대 일부 농장은 경작 기계화를 이뤄냈고, 몇몇 목장 경영자들은 목축 성공으로 많은 소득을 올린다. 관광업 분야에서 호텔, 스키 리조트, 공예품 판매 등으로 많은 수익도 낸다. 다만 원주민 노동자들의 결근, 나태, 무능력에 의한 작업 비생산성은 외부 경쟁업자와의 대결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경제에서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지하자원이다. 불모의 땅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 석탄, 천연가스, 우라늄, 중석, 석회석, 동 등이 개발을 기다린다. 가장 행운이 깃든 부족은 유타주, 뉴멕시코주, 애리조나주의 나바호족. 소유한 땅에 석탄, 석유, 우라늄이 대거 매장돼 있다. 나바호족은 백인 기업에 맡겨 도지 임대료와 채굴료를 받기 시작한 지 오래다. 석유 한 가지만으로 연간 1억 달러 이상 채굴 요금을 받는다. 나바호족은 이를 각종 산업에 재투자해 경제부흥을 이룩하고 있다. 자체 대학도 설립해 부족원의 고등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백인 기업에 터무니없이 싼 금액에 천연자원 개발권을 넘겨왔다. 이들은 1975년 결성한 부족에너지자원위원회를 설립해 전환점을 마련했다. 석유 재벌들이 부당한 가격에 석유 개발권을 착취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OPEC과 유대관계를 형성해 석유개발에 불리한 압력도 피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지하자원이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실제로 알래스카주의 에스키모를 비롯한 원주민들은 석유 자원 개발로 가난에서 벗어났다.
참고 자료 : 여치현 지음·발행처 휴머니스트 ‘인디언 마을 공화국(2012)’, 여치현 지음·발행처 이학사 ‘인디언 자치공화국(2017)’, 김철 지음·발행처 세창미디어 ‘인디언의 길(2015)’, 윤상환 지음·발행처 메드라인 ‘아메리카인디안투쟁사(2003)’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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