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은 영국 등 왕족이 붙이는 칭호이다. 저명하고 오래된 골프장 이름 앞에 붙는다. 1891년 호주 빅토리아주 블랙록에 만들어진 멜버른 골프클럽 앞에 ‘로열’이 붙은 것은 1895년이다. 만들어진 지 4년 만에 빅토리아 여왕(1837~1901년)이 칭호를 붙였다. 호주 코스로는 첫 번째다. 시드니 골프클럽은 2년 뒤인 1987년 ‘로열’이 붙었다.
이 골프장은 1926년 골프 설계 장인의 손길을 거친다. 바로, 알리스터 매켄지 박사다. 매켄지 박사는 서쪽 센드벨트 지역을 부지로 선정한다. 그때 만들어진 코스가 웨스트 코스다.
매켄지 박사는 연륜으로 코스를 주물렀다. 사람들은 당시를 코스 설계 황금기라 불렀다. 당시 매켄지 박사는 마스터스로 유명한 오거스타 내셔널을 설계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로열 멜버른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설계 당시 사용했던 도구가 있었다. 중장비가 없던 시절이라, 말에 도구를 묶어서 땅을 갈았다.
도구를 지나니 클럽하우스가 나타났다. 좌측에는 잘 관리된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클럽의 배려로 하우스를 구경할 수 있었다. 1층에는 유명 보석 회사에서 만든 트로피가 가득했다. 벽에는 사람 이름으로 빼곡하다. 1층에는 매켄지 박사의 이름으로 명명한 방이 있었다. 액자가 빼곡했다. 2층에는 로열 칭호를 붙인 왕족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구석에 있던 두 방은 감동을 줬다. 첫 번째 방은 역사관, 두 번째 방은 도서관이다. 클럽이 보유한 책을 모두 비치했다. 회원에게는 무료로 빌려줬다. 전 세계 도서관보다 방대한 자료가 자리했다.
1층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프로숍을 거쳐 1번 홀 티잉 구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간단한 연습 구역이 있었다.
올해로 132주년. 한때 세계 5대 골프장 위에 티를 꽂았다. 아시아 태평양 아마추어 챔피언십(AAC) 직후라 대회 세팅이다. 컴포지트(복합) 코스 18홀에서 라운드를 했다. 웨스트 12홀과 이스트 6홀로 구성됐다.
첫 홀은 파4. 티샷했다. 두 번째 샷 상황. 영국 스타일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국을 품은 호주 스타일이다. 고저 차가 심하고, 벙커 질이 달랐다.
첫 홀부터 버거웠다. 그린 옆 홀로 자리한 벙커마저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후부터 깃대를 보기 힘들었다. 도그레그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휘었다. 간신히 그린을 노릴 타이밍. 두려웠다. 수없이 많은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4번 홀 그린에는 7개의 벙커가 자리했다.
샷을 할 때마다 벙커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고저 차 때문에 벙커가 숨기도, 더 많아 보이기도 했다. 손 카트를 끌고 하는 라운드라 의지할 곳이 없었다. 차고 있던 가민 S70으로 벙커 위치를 파악했다. 앞과 뒤를 찍으며 벙커를 피했다.
15번 홀부터 태풍이 들이닥쳤다. 동반자 중 두 명이 포기했다. 영국인과 둘이 백에 있던 옷을 껴입고 플레이를 이었다. 동반자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를 썼다. 내린 비, 깔린 안개, 휘는 깃대에 무용지물이었다. S70은 달랐다. GPS를 기반으로 한다. S70이 평소보다 더 알려줬다. 바람 방향과 속도를 자세하게 계산했다. 18번 홀, 자칫 짧으면 점수를 잃을 상황. 동반자가 거리를 물었다. 먼 거리에서 “136야드(124m)”라 소리쳤다. 끄덕이던 그는 거침없이 스윙했다. 온 그린. 그린 위에서 공을 확인한 그는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홀에 공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악수했다. 코스에 대한 경의도 표했다.
로열 멜버른 라운드를 글로 표현하면 베어 그릴스가 출연한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이다. 친환경을 중시하는 호주 정부 때문에 파리 떼가 끝없이 방해한다. 샷마다 못해도 8마리가 붙었다. 샌드 벨트 벙커는 18홀 내내 괴롭힌다. 러프는 정글이다. 도전의 연속이라 호주 오픈, 호주 여자 오픈, 프레지던츠컵(미국팀과 유럽을 제외한 국제팀의 남자 골프 대항전) 등이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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