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블록체인 행사장에서 잠시 숨을 돌릴 때였다. 한 외국인 업계 관계자가 다가왔다. 명함을 보니 자국에서 꽤 큰 규모 있는 거래소에서 코인 상장을 담당하는 헤드였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곳은 아니였다. 기자라고 하니 그는 내게 한국의 좋은 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프로젝트가 상장되면 상장피도 떼주겠다고 제안했다. 사람 좋게 웃으면서 다가온 그에게 “그건 한국에서 불법이야”라고 정색하며 말하긴 어려웠다. 친절하게 돌려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가상자산 규제와 정책에 관해 기사를 써. 어떤 것이 불법이고 금지되어 있는 지에 대해서도 기사를 써”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답했다 “So what?(그래서 뭐?)”
사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흔하지 않으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나 투자자에게 이런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모 업체가 이상하다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문제는 규제의 그레이존이다. 가상자산 관련 제도 자체가 아직 마련 중이니, 이것을 불법이라 규정 짓기에는 모호한 영역의 비즈니스들이 있다. 기사를 함부로 쓰기 어렵다. 기자도 이런데, 기업 역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도를 지키려는 사업자는 움츠러들고 법과 제도 앞에 ‘So what?’인 사람들만 활개를 친다. 미인가 가상자산 거래소는 공격적으로 영업하지만, 국내 거래소는 대부분 매출이 없어 적자로 신음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올해 부랴부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마련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테라-루나 사태와 FTX 사태 등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를 거치며, 업계에 일정 자정작용도 일어났다. 몇몇은 쇠고랑을 찼다. 하지만 시장의 대부분 플레이어들은 모호한 그레이존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혼란을 넘어 과연 이 겨울을 넘길 수 있을지 고민한다. 최근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대부분 매출과 프로덕트, 서비스에 대한 고민으로 대화를 채운다. 요즘은 이런 소식도 듣는다. “기자님, 어디어디가 힘들어서 직원들을 내보낸대요”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며 시장에는 봄이 온다는데, 업계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창밖에 겨울이 온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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