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 같은 큰 나라들에 있어 서로 등을 돌리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약 1년 만의 대면 회담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갈수록 격화하는 미·중 경쟁이 충돌로 치닫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시 주석과 만났다. 지난해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첫 정상회담 이후 꼭 366일 만이자, 각자의 현직 취임 이후 두 번째 대면 회담이다. 시 주석이 미국을 방문한 것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이후 약 6년 만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우리가 모든 문제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유용했다”고 1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두 정상의 오랜 인연부터 언급했다. 이어 “나는 우리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해, 잘못된 의사소통 없이 지도자 대 지도자로 서로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번 대면 회담의 중요성을 짚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양국 간)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하며,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는 일에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기후변화, 마약 단속,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며 “우리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인 중미 관계는 가속하는 글로벌 변혁의 넓은 맥락에서 인식되고 구상돼야 한다”면서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고 인류의 진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미 관계는 지난 50년간 결코 순조로운 항해를 한 적이 없었다. 항상 이런저런 문제에 직면했었다”면서 “하지만 우여곡절 속에서도 계속 전진해왔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중국과 미국 같은 큰 나라들에 있어 서로 등을 돌리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면서 양국 간 충돌은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은 역사, 문화, 사회제도와 발전 경로가 다르다”면서도 “서로 존중하고 윈-윈 협력을 추구하는 한, 이견을 극복하고 양국이 잘 지낼 수 있는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회담은 양국 패권전쟁이 노골화하고,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열렸다. 수년간 이어진 양국 전략경쟁 구도와 쌓인 갈등을 감안할 때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없다. 두 정상은 1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회담에서도 신냉전, 중국의 체제변경 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5불(不)에 합의했으나, 이후 양국 관계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중국 정찰풍선 사태 등으로 한층 악화했었다.
하지만 당장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으로서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경제 성장이 둔화한 중국으로서도 더 이상 충돌이 심화하지 않도록 현시점에서 양국 관계를 안정화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는 간단하다”면서 “점점 더 치열해지는 미·중 경쟁이 갈등으로 치닫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실질적인 변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없다”면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 대면 회담은 미국의 대선 캠페인 전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번 회담으로 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긴박감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날 두 정상의 모두발언에서 일부 시각차도 확인된다. 당장 시 주석이 “한쪽이 다른 쪽을 개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언급한 것부터 중국의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변화, 마약 단속 등 글로벌 이슈에 있어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서 역할, 책임을 다해줄 것을 강조한 반면, 시 주석은 상호존중과 공존에 방점을 찍었다.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회담에는 작년 발리 회담보다 많은 12명의 참모가 각각 배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양옆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배석했고, 시 주석의 옆에는 왕이 외교부장이 자리했다. 미·중 양자 관계 현안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북러 군사협력 등이 주요 의제로 손꼽힌다. 지난해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기점으로 단절된 미·중 군사대화 재개, 펜타닐 마약 밀매 단속 등에 대한 합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을 통해 이번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신장 위구르 및 홍콩 인권 문제도 언급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정상회담 직후 양측은 회담 결과를 담은 발표문을 공개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지에서 기자회견도 진행한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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