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잇따라 단독 의결하면서 파행이 빚어지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예산안을 의결해 예결특위로 넘기로 했지만, 야당 의원들이 일정 연장을 요구하면서 예산안 처리가 무산됐다. 여야는 오는 20일 추가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예산안은 기한내에 상임위에서 예결위로 넘어가지 못하면 통상 정부안을 예결위에서 논의한다. 하지만 일정을 연장해 협의를 지속하자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이에 여당은 정족수 부족으로 인해 야당이 단독 의결을 하지못하자 이같은 편법을 썼다고 반발하며 퇴장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간사)은 “지금 양당이 예산 심사에 있어서 전혀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음으로 미룬다는 것은 지금 단독 처리를 하기 위한 그런 의결정족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밖에 안 되고 시간을 끌기 위한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재정 산자위 위원장이 향후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지 않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하면 일정 변경에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했다.
앞서 전날 산자위 예산소위에서 여야는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관련 예산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당초 야당 위원 수가 여당 위원보다 많아 단독 의결이 가능했지만, 위원 중 하나인 김한정 민주당 의원이 출장 중인 상태라 정족수 미달로 강행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여당의 주장이다.
민주당은 국회에 부여된 예산 심사권에 따라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각각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고 해서 의결을 못 하고 정부안 원안 그대로 상정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것”이라며 “(정부안을 올리는) 그것만큼은 원칙적 입장, 의회주의 입장에서 허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올해 예산안 심사 시작 후 여러 상임위에서 예산안을 단독으로 의결한 바 있다. 지난 9일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정부 예산안에 없었던 지역사랑상품권을 약 7000억원, 전날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새만금 사업과 관련 1471억원을 단독 증액 의결했다. 이틀 전인 14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소위에서는 정부가 추진한 ‘글로벌’ 사업 관련 예산을 1조1600억원가량 삭감하고 R&D 관련 인건비 지원 등에서 2조원을 증액하는 안을 일방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예산안 처리 과정에 우려를 표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여야 간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의석수를 무기 삼은 폭주가 예산국회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며 “탄핵, 입법, 국정조사, 예산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폭주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예산안만큼은 상생과 협치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상임위와 예결위 등에서 예산을 일방 통과시킬 수는 있지만, 실제 편성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국회의 증액 요구에 동의하지 않으면 최종 결정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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