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부터 ‘패션사회적기업과 창업’이라는 제목의 대학 강의를 맡게 돼 그 주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패션과 사회적 경제라니? 어울리지 않게 들릴 수 있다. 패션하면 떠오르는 화려함과 막대한 소비와 빠르게 바뀌는 유행에 따라 사용되는 자원에 대한 이미지가 연상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2007년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도 ‘사회적’과 ‘기업’이 어떻게 병행할 수 있냐며 비난하던 사람도 많았다. 기업이 사회적인 탈을 쓰고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였을 것이다. 다행히 사회적 가치와 기업의 가치를 조화롭게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모델이 나타나면서 그분들도 지금은 안심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다.
사실 패션은 오래된 산업이고 의식주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처음부터 사회적 경제가 발전한 분야이다. 가장 먼저 패션 산업이 직접 연관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었다. 특히 패션 산업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가해자가 아니라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겠다며 시작한 기업이 도드라졌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력 착취와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정무역 기업이 생겨났다.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사고(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의 지상 9층 빌딩인 라나플라자가 붕괴, 사상자 1129명 중 대부분이 봉제업에 종사하는 사회 극빈층이었는데 특히 생산효율을 위해 3교대로 문을 잠가두고 일을 시켜 희생이 커졌다) 이후 동남아시아의 어린이가 학교에 가는 대신 재봉틀 앞에 갇혀서 만들어지는 옷을 입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매년 4월 24일 내 옷의 생산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자는 ‘Who made this clothes?’ 운동이 국내에서도 활발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염을 많이 일으키는 산업 2위에 해당하는 패션산업에서 매초 2.6톤의 의류 폐기물이 소각된다. 이것을 가장 잘 알고 있던 패션산업 종사자가 새로운 소재를 계속 생산하고 버리는 악순환을 깨고자 버려지는 자원으로 제품을 디자인하는 업사이클(upgrade+recycle) 문화를 만들었다. 2008년 3개의 브랜드로 시작한 한국 업사이클 산업은 2023년 현재 전국에 500개가 넘는 브랜드가 활동하며 단일 국가에서 가장 많은 업사이클 브랜드를 보유한 나라로 성장했다.
나아가서 버려지기 전에, 생산 과정에서 소재와 가공과정의 환경 영향성을 줄이기 위한 기술과 노력이 이어진다. 바나나잎, 선인장, 햄프줄기 등 자연에서 유래한 천연소재가 개발되고, 석유가 아닌 페트병에서 만들어낸 원단과 생산품의 품질과 종류도 늘어났다. 2013년 1종이던 재활용 원단 품목은 현재 30여 가지로 눈에 띄게 확장되었다. 원단의 염색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와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포도 껍질과 보리로 염료를 제작하고, 사용되지 않는 부분까지 염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프린트 기법으로 필요한 만큼의 염료만 사용하는 기술이 활발하게 도입되었다. 최근에 참여한 박람회에서 암석을 이용해서 화학물질 없이 염색을 하는 기업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어서 패션의 가치와 가능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패션사회적기업의 활동범위가 넓어졌다. 발달장애인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만드는 패션제품의 수익금은 발달장애인의 미술교육을 위해 사용된다. 중년의 활동복이던 개량한복은 생활한복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문화가 되었다. 작년 유명 스포츠 브랜드에서는 임산부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신고 벗을 수 있는 신발을 출시했는데, 당연하게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점에서 박수를 받았다.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편하게 입을 수 있으면서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인 의류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의류로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 사례가 되었다.
패션의 어원은 행위나 활동하는 것(doing) 또는 만드는 것(making)을 뜻하는 라틴어의 팩티오(factio)로, 사전적 의미는 ‘양식, 방식, 형, 유행, 관습, 습관’이다. 실제로 모든 생활양식으로 발전한 패션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며 우리 생활을 패셔너블하게 만들어줄 것인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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