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에서 방영했으며 현재는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방영 전에는 북한 군인에 대한 미화, 식상한 로맨스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던 것에 대비해, 종영한 현재의 시점에서 이 드라마는 북한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북한이라는 키워드가 대중들에게 화제가 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정치권 참여를 선언한 탈북 인사가 있어 화제다. 2016년 8월 탈북한 인물이자 국가안보전략위원회 특임전략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한 ‘태영호 전 주영국북한대사관 공사(이하 직함 생략)’의 이야기다.
북한 외교관 엘리트 코스를 밟은
1962년 7월 25일 북한 평양에서 태어난 태영호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집안이 유력가였던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부친은 평양건설건재대학 시공강좌 교원이었으며, 모친은 서문인민학교 교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태’씨 성을 가진 인물이기에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이 그의 부친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그 자신은 유력가의 자제는 아니었으나, 그의 반려자는 다르다. 그의 아내 오혜선 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겸 호위총국장을 지낸 오백룡의 손녀이자 김일성정치대학 총장을 지낸 오기수 중장의 딸로 알려져 있다. 태영호의 조부는 빈농으로 살았지만 북한군이 북중국경으로 후퇴할 때 그 자리에 머물렀던 다른 이들과는 달리, 북한군을 따라 후퇴했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핵심계층으로 분류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럽통 외교관으로 이름을 날리다
학창시절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던 태영호는 일찌감치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그 덕에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5년제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으며, 이후 외무성 8국에 배치되면서 외교관으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부터는 덴마크에서 서기관으로 활동했으며, 1999년에는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 6월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의 인권대화에서 북한 대표단 단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하는 등, 외교관으로서 그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인권대화 당시 그의 직책은 외무성 8국 유럽연합 담당 과장 겸 구주국장 대리였다. 줄곧 유럽연합을 담당하며 근무하던 그가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참사관으로 파견이 결정된 2006년이었다. 이후 그는 유럽, 런던 등지에서 북한의 체제를 선전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영국으로 북한의 유력 인사가 방문할 시에는 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귀순,
최고위 외교관의 탈북
2016년 8월, 우리나라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게 된다. 북한의 고위 외교관이 탈북해 우리나라에 귀순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태영호였다. 탈북 이전까지 태영호는 주영국북한대사관 서열 2위의 인물이었으며, 북한 내에서도 손꼽히는 유럽 전문가였다. 태영호는 김정일 독재 체제 말기부터 탈북을 준비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실제로 이전부터 영국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접촉하고 미국 요원들과 면밀하게 탈북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연유에 대해 다양한 추측들이 제기됐다. 혹자는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추측했으며, 또 혹자는 생활의 궁핍함을 이유로 들었다.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에서 추방당한 외신기자의 입국보증 담당자가 태영호였으며, 이에 따른 문책이 두려워 귀순한 것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태영호가 직접 밝힌 이유는 자녀들이었다. 두 아들을 데리고 해외에서 생활하던 상황에서 장남의 강제귀국이 결정되자, 김정은이 노예주인 북한 사회에서 아이들을 노예처럼 살게 만들기 싫었다는 점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보수진영 친화적 활동
귀순 후 그의 신변 조사는 2016년 12월 23일까지 이어졌다. 조사가 끝난 이후 그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했으며, 이후 통일을 위해 대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듬해부터 그는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에서 국가안보전략위원회 특임전략자문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북한에 관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매체에 의견을 기고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특임전략자문위원으로 그는 2018년 5월 31일까지 활동했다.
이후 2018년 7월부터 9월까지는 문재인 정부 통일부에서 국제안보행정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즈음부터 보수진영과 친밀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년 10월에는 대한민국 보수주의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으로부터 제1회 북한인권상을 수상했다. 반면 진보적 성향의 단체에서는 태영호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2018년 11월 7일에는 반미주의 대학생 단체가 “통일에 방해되는 행동을 당장 멈추라”는 경고 메시지를 태영호에게 전달했으며, 이로 인해 그의 강연이 경호상의 문제로 취소되기도 했다. 본 단체는 작년 8월에도 ‘태영호, 박상학 체포 결사대 감옥행’을 결성해 선전 활동을 펼친 바 있다.
‘태구민’이라는 이름으로
제21대 총선 출마
태영호에 대해 북한에서는 귀순 이후 지속적으로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반응을 내놓고 있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태영호에 대해 “인간쓰레기”라고 거칠게 칭하며, “우리 공화국에서 국가자금 횡령죄, 미성년 강간죄와 같은 온갖 더러운 범죄를 다 저지르고 법의 준엄한 심판을 피해 도망친 천하의 속물”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 2018년 5월 심재철 당시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부의장이 태영호를 국회로 초청해 강연을 한 때에도 이를 문제시해 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한 바 있다.
태영호의 정치적 성향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보수진영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평가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한 인사지만 2018년 8월 15일에는 보수진영 건국절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바 있으며, 2019년 9월 조직해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남북함께시민연대’는 주로 보수단체를 대상으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월 10일, 그는 예상대로 보수 진영에 발을 담갔다. 자유한국당 입당과 함께 총선 지역구 출마의 뜻을 밝힌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월 26일 4.15 총선 인재로 태영호 입당을 발표했으며, 그의 강남갑 지역구 전략공천을 준비하고 있다. 본명이 아니라 주민등록상의 이름인 ‘태구민’으로 출마해 이름대로 ‘북한 주민을 구하겠다’는 뜻을 밝힌 그가 과연 국회 입성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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