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흙에서 나서 나중에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즉, 인간은 죽으면 땅에 묻히게 된다. 과거에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묘지 포화’ 상태다. 명당자리를 골라 조상을 모시는 것을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자식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도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경오염과 토지 부족의 원인으로 인해 화장, 분납골, 수목장 등의 장례문화로 바뀌고 있다. 그러던 중 최근 미국에서는 새로운 장례법이 합법화되었다. 바로 시신을 퇴비로 만드는 ‘인간 퇴비화’다. 그렇다면 ‘인간 퇴비화’는 어떻게 진행될까? 지금부터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장례 방법인 ‘인간 퇴비화’를 자세히 파헤쳐 보도록 하자.
미국 워싱턴주에서 합법화된
‘인간 퇴비화’
미국 워싱턴주에 살던 조경사 베이츠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정원에 묻히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오랫동안 가꿔온 정원의 거름이 되어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2017년 암으로 숨진 베이츠는 그의 유언대로 거름이 됐다. 워싱턴 주립대에서 그의 시신을 풀과 미생물 등을 활용해 흙으로 만든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이 ‘인간 퇴비화’의 시초다. 이후 2019년 5월 워싱턴주 의회는 민주당이 발의한 ‘인간 퇴비화’ 법안을 통과시켰고,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최초로 인간 퇴비화를 합법화하는 주가 됐다.
‘인간 퇴비화’가 탄생하게 된 계기
시신 퇴비화의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리컴포즈’(Recompose)라는 회사다. 이 회사의 대표 카트리나 스페이드는 30대부터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가 농가에서 오래전부터 가축의 사체를 퇴비로 만들어 사용하는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리컴포즈’를 창립했고, 워싱턴 주립대의 토양과학부 린 카펜터 박사와 함께 베이츠의 시신을 포함한 6구의 시신을 처리해 흙처럼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인간 퇴비화’란 무엇인가?
인간 퇴비화는 ‘사람이 죽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오랜 종교적 금언을 실현한 장례 방식이다. 시신을 나뭇조각으로 가득 찬 용기 안에서 약 30일간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재구성’ 과정을 거쳐 정원 화단이나 텃밭에 쓰이는 거름으로 만드는 것이다. 치아와 뼈 등을 포함한 모든 육체는 퇴비화된다. 해로운 미생물 등 병원체도 분해가 가능해 질병으로 죽은 사람도 퇴비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염성이 높은 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퇴비장에서 제외된다.
‘인간 퇴비화’의 과정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나무 조각, 짚과 같은 천연 물질들과 함께 밀폐 용기에 보관하면서 수시로 공기와 열을 주입해 준다. 이 상태로 약 30일 동안 미생물에 의해 흙으로 분해되는 과정을 거치면, 뼈와 치아를 포함한 모든 신체가 퇴비화된다. 이 같은 과정이 끝나면 유가족 등은 흙이 된 시신을 받아 가족의 정원이나 텃밭 혹은 화분에 뿌려 꽃이나 나무가 자라나는 토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지역 보존 단체들과 협력에 의해 인근 땅에 영양을 공급하는 데 기부될 수도 있다.
매장과 화장의 단점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장례 문화는 매장 또는 화장이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 모두 단점이 존재한다. 매장의 경우, 토지는 물론 관리 비용까지 필요하다. 인구 과밀 지역에서는 토지 사용 면적이 너무 크다는 문제점도 있다. 화장은 매장에 비해 공간 차지도 적고 비용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화장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문제다. 실제 미국에서 화장으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만 해도 2억 7,200만kg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 퇴비화’의 이점
그렇다면 퇴비장의 장점은 무엇일까? 일단은 저렴하고 친환경적이며 대도시의 토지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화장 대신 인간 퇴비 장례를 치를 경우, 대기로 배출되는 탄소 1.4톤을 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장례 절차인 시신 운송, 관 제작 등에 소모되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인간 퇴비 장례의 가격은 약 5500달러(약653만원)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의 표준 장례비용은 화장 약 7000달러(약833만원), 매장 약 8000달러(약952만원)이다.
미국에서의 반응?
미국에서는 시신의 방부 처리가 땅을 오염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땅에 남은 방부 약품 탓에 미국의 공동묘지 주변 토양이 황폐해질 뿐 아니라 각종 유해 박테리아, 심지어 발암물질까지 검출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인간 퇴비화 법안이 최종적으로 시행되기 전부터 미국 내에선 인간 퇴비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천주교 등 기존 종교계의 반발도 만만찮다. 인간을 퇴비로 만들어 뿌린다는 자체가 품위 없다는 반론이다.
국내에서도 가능할까?
사진 : 국립하늘숲 추모원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인간 퇴비화가 합법화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국내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장례 방법은 자연과 공존하는 수목장이다. 수목장은 시신을 화장하고 나서 뼛가루를 나무 뿌리에 묻는 자연 친화적인 장례 방식이다. 좁은 국토로 묘지 확장에 어려움을 겪은 스위스에서 1999년 1윌 가장 먼저 시작됐으며, 국내 수목장은 2012년부터 활성화됐다. 국립 수목장으로는 국립하늘숲추모원이 있으며, 파주 서울시립수목장 등 공립도 존재한다.
‘인간 퇴비화’의 미래는?
인간 퇴비화 장례법이 앞으로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시신을 퇴비로 처리하는 데 대한 윤리적, 사회적 의문은 계속 제기될 것이며, 기존의 장례업계와 종교계의 반발 역시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장례 방법과는 많이 다른 만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새로운 장례법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인간 퇴비화의 합법화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인간 퇴비화’를 뛰어넘는
이색 장례법
유골을 인공위성에 실어 우주에 쏘아 올리는 ‘우주장’도 있다. 미국의 위성 제조업체 엘리시움 스페이스는 지난 2018년 150명의 유골 일부를 작은 캡슐(가로세로 1cm)에 담아 이니셜을 새긴 뒤 초소형 위성에 실었다. 그리고 이 위성을 미국 민간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로켓 ‘팰컨9’에 담아 우주로 발생했다. 유골 위성은 앞으로 4년간 지구 주위를 맴돌다가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불타 사라진다. 그동안 업체는 유족들에게 고인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글 : 이현주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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