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업체 광원산업의 이수영(83) 회장이 평생 모은 600억 원대 재산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했다. 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그녀는 우리나라의 노벨 과학상 배출을 지원하기 위해 676억 원 규모의 미국 개인 부동산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KAIST 개교 이래 가장 많은 기부금을 전달한 이수영 회장, 그녀는 이 엄청난 금액을 어떻게 기부하게 됐을까?
사법고시 낙방 후 기자 생활 17년,
그리고 CEO가 되기까지
1936년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수영 회장은 당대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였던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1년간 사법고시를 준비했다고 알려졌다. 자서전을 통해 “도시락 2개를 싸서 새벽에 집을 나와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서관에서 온종일 앉아 공부만 했다”라고 밝혔을 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처음 본 사법시험에서 고배를 마신다. 시험 공부를 하면서 심신이 피폐해진 것을 느낀 그녀는 한 번 떨어졌지만, 법조인에 대한 미련을 접고 새길을 찾아 나섰다.
사법시험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결심한 뒤 우연히 신입 기자를 뽑는 공고문을 본 그녀는 1963년 서울신문 10기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러나 편집국 내 권력 싸움 등으로 따돌림을 당하면서 4개월 만에 회사를 나왔다. 이후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를 거쳐 서울경제신문에 경력기자로 스카우트되면서 1980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여성 기자는 사회부나 교열부 쪽에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지만, 그녀는 경제부 기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1년에는 ‘언론인 특별 취재상’을 받기도 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재계 · 금융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이 있다.
사진 : Youtube ‘MBN News’
그러나 1980년, 언론 통폐합이 있던 시기에 노조를 만들었다는 오해를 받고 기자 생활을 접게 된다. 이후 신문사 재직 중이던 1971년에 ‘언젠가 은퇴하면 농사 짓고 살아야지’ 하고 사 두었던 ‘광원목장’에 더욱 집중했다. 돼지 2마리를 들여와 시작한 사업은 이후 1,000마리가 넘는 돼지를 사육할 정도로 번창했다. 그러나 목장 땅이 경인고속도로 나들목(IC)으로 수용됐고, 새로 산 땅 역시 전부 그린벨트로 묶여 버리면서 좌절에 빠지게 되는데,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 모래 채취 사업이었다. 산업화에 건설 자재인 모래가 필수라는 것을 파악한 이 회장은 이내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를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모은 재산으로 마침내 1988년에는 부동산 전문기업인 ‘광원산업’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주로 사용되지 않는 건물들을 인수해 잘 가꾼 후 임대료를 받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서울 여의도 백화점 빌딩을 인수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월세가 상당한 미국 LA 현지 건물을 소유해 뛰어난 사업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법대를 나온 그녀가
KAIST에 기부하게 된 이유
그러나 어느 날 그녀는 덜컥 신장암 선고를 받고 만다. 다행히 전이가 되진 않았지만, 암 선고 이후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죽기 전에 사회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혈육은 없지만, 이 회장은 사회적 상속자를 정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물색했다. 서울대 법대 장학재단 이사장을 역임할 정도로 대학 교육에 큰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법도 중요하지만 인간에게 더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사진 : Youtube ‘KAIST Archives’
그러던 중 우연히 일면식도 없던 서남표 전 KAIST 총장의 짧은 인터뷰를 보고, 과학기술 후학 양성에 KAIST가 적격이라고 판단해 기부를 결심했다고 알려졌다. 2012년에 80억여 원을 처음으로 기부했고, 2016년에는 10억여 원, 그리고 올해 676억 원을 기부하여 총 770억가량을 기부하면서 이 회장은 KAIST 개교 이래 최고 기부액을 기부한 기부자로 기록됐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는 KAIST 명예박사, 2018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받았다.
80대에 첫사랑과 결혼,
통 큰 기부에 남편도 응원
사진 : Youtube ‘대전MBC뉴스’
한편, 이 회장의 러브스토리도 큰 화제를 모았다. 80년 넘게 독신으로 살아온 이 회장은 2018년 서울대 법대 동창인 김창홍 변호사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졸업하고 한참 뒤 동창 모임에서 재회했다고 전해진다. 김 변호사는 대구지검 지청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당시 사별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거액의 기부를 결심한 이 회장에게 김 변호사는 큰 힘이 되어 줬다고 한다. 보통 거액의 기부는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 고초를 겪곤 하는데, 김 변호사는 오히려 이 기부를 응원해 줬다고 한다. 이 회장은 “작년 9월 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 최근 건강이 나빠져 계속 누워 있으니까 남편이 ‘그 돈 언제 기부할 거냐’라고 물을 정도로 내 결정을 응원해 줬다”라며 고마움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 노벨상 나왔으면
이수영 회장은 발전기금 기부 약정식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나와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이 당부에 보답하기 위해 재단 수익금은 과학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교수, 인류 난제를 해결하고 독창적인 과학 지식과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교수를 선발해 지원하는 제도인 ‘KAIST 싱귤래리티(Singularity) 교수’를 지원하는 노벨상 연구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이 제도는 10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연구 수행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회장은 자신의 기부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며 단지 자신의 작고 부끄러운 결정이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밝고 환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용기를 내면 좋겠다는 소망도 전했다.
글 : 이윤서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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