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네이버 뮤직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00년대 팝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1998년에 아이돌로 데뷔한 그녀는 음악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 리스너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관심을 받은 인물이었기에 더욱 혹독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자신을 돈으로만 보는 부모에게 어린 시절부터 휘둘려 왔으며, 자신의 사진을 찍어 거액을 챙기려는 파파라치들에게 긴 시간 시달려야만 했다. 그 결과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약물에 중독되고 이상 행동을 보이는 등, 한때 처참하게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하지만 빛나는 재능이 다시 한 번 그녀를 일으켰다. 그렇다면 재기에 성공한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어떠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일까? 그 근황을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사진 : 네이버 뮤직
기록의 여왕
사진 : ‘…Baby One More Time’ MV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지난 1998년 10월, 데뷔 싱글인 ‘…Baby One More Time’을 발매했다. 당시 한국 나이로 열여덟 살이었던 그녀는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참고로 해당 앨범은 10대 솔로 가수 음반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며,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데뷔 싱글로 1위를 한 최초이자 최연소 가수에 해당한다.
사진 : ‘TOXIC’ MV
참고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위에 언급한 것들 외에도 빌보드 200 차트에서 4번 연속 1위를 한 최초의 여가수이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최연소로 입성한 인물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기록의 여왕’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커리어인 셈이다.
아메리칸 스위트하트의 몰락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그렇게 영원히 정상의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인생은 2004년, 케빈 페더라인이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점차 꼬여 가기 시작한다. 애초에 불륜으로 첫 단추를 잘못 꿴 사이였던 두 사람은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3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혼이 끝이 아니었다. 케빈 페더라인은 금전 문제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이에 브리트니는 약물에 손을 대면서 심한 조울증을 얻게 된다. ‘옆집 소녀’ 이미지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그녀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자, 파파라치들은 더욱 집요하게 따라붙어 그녀를 괴롭혔다. 그 결과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스스로 삭발을 하고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등, 계속해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결국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두 아들의 양육권마저 전 남편에게 빼앗긴 채 재활센터에 들어가 치료를 받기에 이른다.
화려하게 부활하다
사진 : 네이버 뮤직
하지만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가진 열정과 재능은 녹슬지 않았다. 결국 2008년 ‘Womanizer’로 재기에 성공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Circus’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2000년대 여가수 중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등, 다시 한 번 ‘리빙 레전드’로서 자신의 역사를 써 나갔다.
사진 : 네이버 뮤직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뿐이었다.”라며 재기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한편 2012년에는 무려 5,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포브스지에 의해 2012년도에 가장 돈을 많이 번 여성 가수로 기록되는 기염을 토해 내기도 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근황은?
사진 : 브리트니 스피어스 SNS
지난 5월, 그녀는 자신의 히트곡인 ‘Oops!… I Did It Again’의 발매 20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SNS에 포스팅하여 주목을 받았다. 또한 12세 연하의 모델인 샘 아스하리와 목하 열애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오면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사진 : 네이버 뮤직
최근 그녀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보인다. 과거에 많은 아픔을 겪었던 만큼, 그녀의 앞날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빌어 보는 바이다.
글 : 이희주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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