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서서히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일까? 코로나19가 전 세계 각국을 강타하면서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우려와 함께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재난 영화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죽음의 바이러스와 싸워 이기는 주인공들을 보며 잠시나마 위안을 삼으려는 게 아닐까 싶다. 비록 실제가 아닌 픽션이지만,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해 불거지는 다양한 사회문제가 현실감 있게 다뤄지고 있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다시금 경각심을 갖게 한다. 바이러스에 의해 사람이 이상하게 변해가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면? 심지어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을 전혀 알 수 없다면? 나 자신의 생명도 보전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다룬 바이러스 전염병 소재 영화 10편을 준비해봤다.
감기(2013)
국내 재난 영화 <감기>는 H5N1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바이러스 감염 공포를 다룬 작품이다.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로 인해 국가 재난 사태가 선포되고, 바이러스 발생지인 분당이 봉쇄된 상황에서 구조요원 지구(장혁)와 감염외과 전문의 인해(수애) 등이 감염자 치료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개봉 당시 여러 가지 논란과 비판이 많았지만, 2015년 메르스 사태로 이 영화가 재조명되었다.
연가시(2012)
변종 연가시가 인간을 숙주로 삼고 뇌를 조종해 익사시키는 치사율 100%의 전염병을 소재로 한 영화다. 갑자기 영양실조 증세를 보이며 익사한 사람들이 연가시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사람들은 구충제를 구하기 위해 모든 병원과 약국에 몰려든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실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과 마트에 줄을 서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당시에 영화가 흥행하면서 실제 연가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아웃브레이크(1995)
영화 제목이기도 한 ‘아웃브레이크’는 세균의 대유행, 즉 국가 차원의 재앙이 될 정도의 전염병 확산을 뜻하는 용어이다. 1960년 아프리카 자이르에서 최초 발생한 바이러스로 원숭이와 접촉 시 감염되는 출혈열을 소재로 한 영화다. 전염병이 어떤 식으로 발생되고 확산되어 악화되며, 그로 인한 국가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불가피하게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그렸다.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긴박감 넘치는 전개의 영화로 인정받고 있다.
컨테이젼(2011)
박쥐에서 파생된 바이러스가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미국인 베스(기네스 펠트로)를 시작으로 시카코 전역으로 번지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그렸다. 사망자가 점점 속출하면서 도시가 봉쇄되자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시민의 불안감을 악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현실 같은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염병 확산에 따른 인간의 공포와 사회적 혼란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퍼펙트 센스(2011)
아마 가장 색다른 바이러스 소재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오감이 차례대로 사라지는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사랑에 빠진 두 남녀 주인공. 그들은 점점 서로의 체취를 맡지 못하고, 목소리를 듣지 못하며, 서로를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남은 감각으로 서로를 느끼려 애쓴다. 그들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필수 조건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지워져 가지만, 결국 ‘완벽한 감각’에 다가서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28일 후(2002)
이 영화는 좀비 영화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한 영장류 연구시설에 무단 잠입한 동물권리운동가들은 여러 대의 스크린을 통한 폭력 장면에 노출되어 있는 침팬지들이 우리에 갇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침팬지들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한 연구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운동가들은 그들을 풀어주게 되고, 그 즉시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들로부터 피의 공격이 시작된다. 유일하게 이성을 지닌 동물인 인간이 분노의 노예가 되어 이성을 잃고 통제하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다.
더 베이(2012)
작은 어촌 마을에 정체불명의 벌레가 나타나고, 온몸을 썩게 만드는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끔찍한 발진과 함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그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한다. <더 베이>는 페이크 다큐로 만들어진 영화로, 환경오염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물의 오염, 그리고 그 오염으로 인해 결국 피해는 재앙으로 이어져 인간들에게 타격을 입힌다. 영화의 배경지가 된 체서피크 해변은 실제로도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지역이다.
리트릿(2011)
미스터리 감금 스릴러라는 장르를 가진 <리트릿>은 공기 전염이라는 소재를 다뤘다. 외부의 공기를 전부 차단해야만 살 수 있는데, 틈새로 들어오는 공기까지 막기 위해 온 집안을 테이프로 막아버리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끔 만들어 버린다. 온 세상에 전염병이 돌고 주요 인물들이 있는 외딴섬만 안전하다고 하는데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이어지는 반전의 반전이 백미인 영화다. 공기만으로도 바이러스에 노출된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블레임: 인류멸망 2011(2009)
6개월 만에 1,00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 영화 속 한 환자는 고열 증세를 보여 일본 도쿄 근교의 시립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의사는 환자를 단순 감기로 진단한다. 하지만 그다음 날 환자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더니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출혈을 일으키며 사망한다. 더욱 최악인 것은 도쿄 곳곳에 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것. 개봉 당시에는 긴 러닝타임에 비해 지루한 스토리로 아쉽다는 평을 받았으나 최근 들어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캐리어스(2009)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오염된 세상. 호흡과 타액, 혈액으로 감염되는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져 인류가 멸망 직전의 위기를 맞게 되는 내용이다. 바이러스가 퍼지자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돕지 않게 된다. 이에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규칙을 정한다.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은 돕지 않고, 함께 다니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치닫게 되면 생존본능에 충실한 생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내용을 반영했다.
글 : 이현주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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