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까지만 해도 디자이너라고 하면 패션 디자이너를 뜻했다. 패션모델 출신이던 앙드레 김, 루비나 등이 디자이너로 전업해 그 분야를 알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들은 옷뿐 아니라 구두, 가방 등을 직접 디자인한다. 디자이너는 밀라노나 파리 등에서 열리는 패션쇼에서 자기 옷을 입는 모델에 따라 한 해의 운명을 가른다고 한다. 모델이 제대로 런웨이를 못 하면 아무도 그 옷을 안 입는다고 한다. 이처럼 이들은 소비자가 런웨이에서 점찍은 아이템을 바로 구매해서 옷장에 챙겨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느 특정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는 매우 힘들다. 패션 디자이너계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부터 패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전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피에르 가르뎅
‘피에르 가르뎅’은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이자 그가 세운 패션 브랜드의 이름이다. 그는 2세 때 부모와 프랑스로 이주해 14세 때 바늘과 실을 잡았고, 1944년 패션의 도시 파리로 올라와 유명 디자이너 밑에서 영화 촬영에 쓰는 의상 등을 제작했다. 이때 영화 <미녀와 야수>(1946년)에 나온 의상을 제작했으며, 감독의 소개로 크리스챤 디올의 첫 재단사로 뽑혔다. 그 후 1950년 자신의 브랜드를 내놓았고, ‘버블 드레스’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그의 동업자인 세르지오 갈리오티가 1975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베네치아 거리에 설립한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이다. 둘은 남성복 브랜드 ‘히트맨’에서 일하다가 만나게 되었으며, 베네치아 거리 37번지에 작은 사무실을 열었다. 창업자인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이름을 빌려와 브랜드명으로 삼았다. 두 사람은 1975년 7월, 1976년 S/S 시즌을 위한 첫 번째 컬렉션의 성공적인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 미국 진출에 성공한 뒤 다양한 제품 카테고리를 확장시키며 유럽과 아시아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발렌티노 가르바니
발렌티노는 어릴 적부터 그의 패션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발견한 부모님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패션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프랑스의 영향력 있는 미술학교인 장데세와 기 라로쉬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로마로 돌아와 1960년 자신의 이름을 딴 발렌티노 패션 하우스를 론칭한다. 이후 1968년 발표된 화이트 컬렉션으로 단번에 국제적인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렸으며, 2006년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레종 드뇌르 기사 작위를 받았다. 2008년에는 그의 삶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발렌티노 : 마지막 황제>가 제작되기도 했다.
가브리엘 샤넬
샤넬은 여성복에 대한 유럽의 전통, 코르셋을 많이 이용하던 1900~1910년대의 여성복에 대해 왜 여자들은 비실용적이고 쓸모없는 복장을 고수해야 하는지 회의를 느껴 당시 애인이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고향 영국에서 남성용 정장의 소재를 여성에게 적용한 스포티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현대적 여성복 ‘샤넬 슈트’로 간단하고 입기 편한 옷을 모토로 하는 디자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성이 많은 옷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하는 실마리를 만들었다.
이브 생 로랑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은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해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 혁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로 ‘생 로랑 시크’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통적인 엘레강스 관념 대신 대중화 시대에 어울리는 ‘매력’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디자이너다. 블랙 예찬론자인 그는 “블랙에는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색상이 존재한다”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이브 생 로랑 제품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유난히 블랙 컬러가 많은 것도 그 이유다.
다카다 겐조
다카다 겐조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브랜드 ‘겐조’의 창업자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만큼 동양스러운 표현이 어우러져 있으며 꽃문양을 자신의 시그니처로 알렸다. 1970년 패션 디자이너인 다카다 겐조가 파리에 자신의 부티크 ‘정글 잽’을 오픈한 것이 시초이다. 처음에는 여성복 전문으로 대히트를 하여 정글 잽은 곧바로 젊고 패셔너블한 젊은이들의 아지트로 부상하였다. 1980년대 일본계 디자이너들의 성공적인 파리 진출을 가능케 한 장본인이다.
마크 제이콥스
뉴욕 출신인 마크 제이콥스는 프랑스의 권위 있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과 미국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를 이끄는,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1986년 그는 패션 유통 및 소매 회사인 미국 온워드 카시야마사의 후원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것이 마크 제이콥스 라벨을 단 최초의 컬렉션이었고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그는 옷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명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현재 남녀 의류, 핸드백, 구두, 향수 등을 선보이고 있다.
톰 브라운
‘톰 브라운’은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이자 명품 패션 브랜드이다. 그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조르지오 아르마니 쇼룸에서 판매원으로 일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정식 경력은 랄프 로렌 산하의 클럽 모나코로 자리를 옮긴 다음인데, 그로 인해 그는 랄프 로렌 곁에서 보조 디자이너 업무를 맡아 패션 업계에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1960년대의 아메리카나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슈트를 내놓으며 유명세에 올랐다. 미국 패션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업적을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본명은 비비안 이사벨 스웨어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1971년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그녀의 동업자이자 연인이었던 말콤 맥라렌과 함께 영국 런던의 킹스로드에 연 패션 매장 ‘렛인 락’을 모태로 성장한 패션 브랜드이다. 또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펑키룩의 대표 주자이다. 런던에 펑크 열풍을 일으킨 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무대 의상을 담당하며 펑크 스타일을 유행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크리스챤 디올
크리스챤 디올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복과 같이 딱딱하고 절제된 옷을 입었던 여성들을 위해 여성스러운 둥근 어깨선과 잘록한 허리를 부각하는 옷과, 종아리를 덮는 길고 풍성한 스커트 스타일을 선보였다. 미국의 잡지 하퍼스 바자의 당시 편집장이 “이건 정말 본 적 없는 옷이다”라는 극찬을 하면서, ‘뉴 룩’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되었다. 자기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세계적인 명성 얻은 후 ‘크리스챤 디올’이 새겨진 향수와 선글라스, 가방 등의 제품이 세계 도처에 깔리게 됐다.
글 : 이현주 press@daily.co.kr
공감 뉴스 © 데일리라이프 & Daily.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