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문을 열면 입을 게 없다는 건 불변의 진리라지만, 아침에 서두르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아우터나 후드 티로 대충 커버 가능한 상의와 달리, 하의는 늘 뭘 입을지 걱정이다. 따스한 봄날을 만만한 슬림핏 청바지, 면바지로 때울 작정인가? 사람들이 당신의 하의 돌려 막기를 눈치채기 전에, 원만한 데일리룩을 완성할 패션 잇템 바지 5종을 알아보자. 이 중 두어 벌쯤 옷장에 장만해둔다면 옷알못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슬랙스
슬랙스만큼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바지가 있을까? ‘느슨하다(Slack)’는 어원처럼, 슬랙스는 몸의 긴장감을 풀고 걸칠 수 있는 바지 중 하나다. 위에서 아래로 살짝 좁아지는 특유의 핏은 너무 달라붙지도 너무 퍼지지도 않아서 누구나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다. 게다가 이 핏은 살짝 체중이 늘어도, 다리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모든 고민을 커버해준다. 무엇보다도 입었을 때 몸이 편하다. 물론 편안함 하면 트레이닝 바지나 냉장고 바지를 능가할 수 있는 바지가 어디 있겠냐만, 매일 그것들을 입고 외출하려면 봄날이 아깝지 않겠는가?
하지만 슬랙스는 다르다. 셔츠나 블라우스와 입으면 단정해 보이고, 티셔츠나 맨투맨과 입으면 적당히 깔끔하다. 함께 입을 수 없는 상의 같은 건 없는 만능 프리패스 바지인 셈이다. 그러니 아직 당신의 옷장에 슬랙스가 한 벌도 없다면 빨리 인터넷 쇼핑몰이든 SPA 브랜드든 한 개 골라잡는 게 좋다. 컬러는 블랙보다 네이비나 진그레이를 추천한다. 일단 입고 나면 슬랙스의 무한한 가능성에 놀라게 될 것이다.
코듀로이 바지
‘코르덴’, ‘골덴’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코듀로이는 한때 할아버지 원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이만큼 멋들어진 소재도 없다. 우단처럼 부드러운 감촉과 섬세하게 짜인 골은 보온과 멋을 동시에 잡았다. 참고로 코듀로이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임금님의 밭이랑‘이라는 뜻으로, 고급스러운 원단의 특징에 딱 맞는 별명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코듀로이를 활용한 다양한 의류와 소품들이 눈에 띈다. 특히 두툼한 코듀로이 재킷은 레트로하면서도 힙한 느낌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렇다면 코듀로이 바지는 어떨까? 원단의 특징에서 알 수 있듯 코듀로이 바지는 따뜻하면서도 고급스럽고, 평범하지 않은 멋이 있다. 그러니 눈에 띄기보다는 은은한 센스를 추구하는 패피들에게 코듀로이 바지를 추천한다. 특히 무채색이거나 장식, 무늬가 없는 밋밋한 상의를 즐겨 입는 경우, 브라운 계열 코르덴 바지는 크게 튀지 않으면서도 센스 있는 감성을 표현해줄 것이다. 게다가 복고 이미지를 극복한 후 코듀로이는 매 겨울마다 돌아오는 스테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으니 믹스매치만 잘한다면 몇 년이고 입을 수 있겠다.
멜빵바지
당신이 패션에 관심이 없더라도,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주목받고 싶다면 멜빵바지를 입자. 위에 무엇을 입든 곧바로 독보적인 패션이 된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두 개의 끈은 무난하게 혹은 유행 따라 차려입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선 당신을 돋보이게 해줄 것이다. 옷 좀 입을 줄 아는 사람, 혹은 적어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멜빵바지 하나쯤 장만해도 후회 없을 것이다. 특히, 멜빵바지는 당신의 2% 부족한 캐릭터를 채워주는 데 가장 효율적인 아이템이다. 멜빵이 바지에 부착된 오버롤 스타일이라면 장난기 넘치는 꾸러기룩이, 탈부착 가능한 서스펜더 스타일이라면 댄디한 프레피룩이 된다.
그렇다면 멜빵바지는 관종들을 위한 바지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멜빵바지만큼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은은한 센스를 보여주는)룩을 완성하는 데 최적화된 아이템도 없을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함께 입을 아우터(겉옷)이다. 코트나 재킷 사이로 살짝 드러난 멜빵은 부담스러움은 줄여주고, 패션 센스는 더해준다. 당신이 약간의 대담함만 발휘할 수 있다면 어두운 색상의 멜빵바지 하나쯤 마련해보자. 모든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다면 밝은 데님 멜빵바지를 추천한다. 그날 당신과 만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뭘 입었는지 기억할 테니까.
와이드 팬츠
일명 ‘혁오 바지’로 불리는 와이드 팬츠는 단어 그대로 통이 넓은 바지다. 유행이 시작된 지 몇 년 지난 지금도 현역이고 당분간은 이 흐름이 계속될 전망이다. 와이드 팬츠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캐주얼하면서도 시크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소위 ‘힙’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리의 모양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이겠다. 와이드 팬츠의 핏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그 편안함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드 팬츠에는 ‘입문’이라는 소소한 시련이 필요하다. 와이드 팬츠를 여러 번 입어본 사람은 그 매력을 알지만,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사람은 선뜻 집어 들기 어렵다. 슬림핏에 비해 눈에 띄는 핏이 부담스럽고, 이제 와서 편승하기에는 언제 유행이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탓이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와이드 팬츠를 입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와이드 팬츠를 입느냐는 것이다. 요즘은 부츠컷도, 일자바지도, 허리부터 A자로 퍼지는 바지도 와이드 팬츠라는 이름하에 판매되니 고르기가 조금 난감할 수 있다. 와이드 팬츠가 처음이라면 적당히 핏이 살아있는 바지를 입는 편이 어느 상의에나 맞춰 입기 좋다. 과감한 도전을 할 자신이 있다면 여백이 많은 벙벙한 핏도 좋다.
카고바지
카고바지는 십여 년 전 걸스 힙합, 밀리터리룩이 유행할 즈음 사랑받았던 아이템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다가 얼마 전 돌아왔으니 복고템의 재해석인 셈이다. 바지 좌우에 붙은 불룩한 주머니의 모양 때문인지, 이 주머니에 군인들이 건빵을 담아 먹었다는 일화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건빵바지라는 귀여운 별명도 있다. 본래 카고바지는 화물선(cargo) 승무원들이 입는 작업복에서 유래하였는데 활동성과 기능성이 좋아 운동이나 작업을 할 때 편안하게 입었던 만큼 스포티한 매력이 있다.
그렇다면 카고바지의 특징, 주머니는 왜 달려있는 걸까? 과거 카고바지를 비롯한 화려한 청바지의 유행이 떠나간 후, 장식성이 최대한 배제된 무난한 바지들이 유행했다. 어디에나 입을 수 있고 어디에나 어울리는 슬랙스, 슬림핏 청바지가 대세였다. 그리고 이 심심한 바지들에 슬슬 싫증이 날 때쯤 주머니가 돌아온 것이다. 카고바지에 심드렁한 사람들도 스톤아일랜드의 카고바지를 보면 슬림핏에 무심하면서도 터프한 매력을 더해준다는 걸 인정할 것이다. 과거의 카고바지가 와이드핏이었다면 최근에는 슬림한 핏으로 출시되는 추세다. 바지에 약간의 멋을 부리고 싶다면, 약간의 디테일만으로 트렌디해 보이고 싶다면 카고바지는 꼭 구매해야 할 아이템 중 하나다.
글 : 서국선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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