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메이크업에 킬힐, 왁스에 넥타이 매던 시대는 잠시 안녕. 언제부턴가 패션 트렌드는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가 된 지 오래다. 너무 멋 내다가 나도 피곤하고 보는 사람도 피곤해지기보다는,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나온 것 같으면서도 은근한 패션 센스가 살아있는 스타일, 이른바 ‘원마일 웨어’가 대세다. 쉬운 듯 어려운 원마일 웨어 스타일링을 정복해보자.
원마일 웨어란?
우리가 원 마일(1mile), 약 1.6㎞ 반경을 돌아다니며 하는 일은 무엇일까. 좁은 듯 넓은 듯 헷갈리는 반경 안에는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산책, 조깅, 친구와의 간단한 약속까지 소박한 일상들이 가득하다. 출근하거나 데이트 갈 때처럼 열심히 꾸밀 필요는 없지만 너무 가볍게 나가자니 약간 아쉽기도 하다. 화장은 안 해도, 수염은 안 깎아도 예쁜 모자나 브랜드 집업 점퍼를 걸치고 싶어지는 거리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보았다면 당신은 원마일 웨어를 시작할 준비가 끝났다.
원마일 웨어를 집에서 편안하게 입는 홈웨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대부분의 원마일 웨어 룩을 보면 트레이닝복이나 루즈핏 상의가 대다수다. 하지만 원마일 웨어에는 기존의 홈웨어에 하나의 포인트가 더해진다. 그 포인트는 명품 운동화가 될 수도 있고 격식 있는 아우터, 눈에 띄는 목걸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포인트든 중요한 점은, 그대로 외출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 살짝 패션에 신경 쓴 티를 내 보이는 것이다. 패션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 쿨함과,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패션 센스를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원마일 웨어! 어떻게 보면 누워서 떡 먹기지만, 어떻게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을 때보다도 섬세한 에티튜드가 요구되는 룩 아닐까?
‘셀린느’와 ‘현아’로 읽는
원마일 웨어
2021S/S에 가장 핫했던 명품 브랜드를 꼽자면 단연 ‘셀린느’다. 커다란 운동장의 빨간 트랙, 페인트 선이 그어진 비행장 위를 런웨이 삼아 걷는 모델들의 룩을 보면, 한눈에 봐도 통일성이 없다. 살랑거리는 원피스에 야구모자와 야구재킷을 걸치기도 하고, 고급스러운 재킷 아래에 트레이닝 반바지를 입기도 했다. 심지어 파티장에 어울리는 원피스에 야구모자, 운동화를 매치한 룩도 있다. 셀린느의 이 모든 룩의 중심에는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후드티와 조거팬츠, 운동화가 있다. 여기에 카디건, 니트, 재킷 등이 더해져 새로운 스타일링이 탄생한 것이다. 각각의 아이템만 뜯어놓고 보면 모두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래서 합쳐졌을 때 더욱 새로운 것이 셀린느의 원마일 웨어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타일을 참고할 수 있는 연예인은 누구일까? 믹스 앤 매치의 귀재 현아는 평소에도 명품과 빈티지를 오가는 폭넓은 패션 센스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원마일 웨어 스타일링에서도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었다. 롱원피스 아래에 청바지, 카디건에 조거팬츠, 빅사이즈 후드 집업에 그물 스타킹 등등. 무심한 듯 신경 써 꾸민 듯 헷갈리지만, 현아만의 감각이 담긴 독보적인 원마일 웨어라 할 수 있겠다. 그 때문일까? 스포츠웨어 브랜드 ‘MLB’의 모델로 발탁된 현아는 로고플레이를 활용한 트레이닝복을 광고하며 원마일 웨어 스타일링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너무 편해! 원마일 웨어의 매력
평소 포멀한 스타일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원마일 웨어를 보고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상하의가 맞지도 않고 뜬금없는 아이템을 매치하질 않나, 한마디로 근본 없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지금 원마일 웨어 믹스 앤 매치에 열광하는 것일까?
원마일 웨어의 제1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편안함이다. 넉넉한 핏 덕분에 몸이 편안한 것은 물론이고, 패션에 대한 마음도 편안해졌다. 원마일 웨어라는 스타일 안에서는 티셔츠 한 장을 입었든, 실크셔츠를 차려입었든 간에 저지 집업이나 운동화로 마무리해도 괜찮다. 그것이 스타일이니까.
그렇다면 편안함에 대한 갈망이 사람들의 패션 센스를 먹어 치운 것일까? 셀린느 수석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은 원마일 웨어 그 자체였던 셀린느 2021S/S 컬렉션에 대해 “스케이트 문화와 유스 컬처의 다큐멘터리 컬렉션”이라고 설명했다. 풀이하자면 자기 감각대로 대충 입은 젊은이들의 젊은 감각을 표방한 셈이다. 재킷은 무조건 정장바지와, 원피스는 무조건 하이힐과, 야구점퍼는 무조건 청바지와 입어야 했던 기존 패션 룰을 깨트린 원마일 웨어. 그 바탕에는 몸의 편안함 이전에 마음의 자유가 있다.
원마일 웨어의 기본템과 포인트템
입었을 때 가장 편안한 옷들을 꼽아보자. 티셔츠, 맨투맨, 조거팬츠, 요가팬츠, 운동화. 이 옷들은 원마일 웨어 스타일의 기본템이자 밑바탕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원마일 웨어 스타일링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옷장 속에서 위의 아이템부터 꺼내 정리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트레이닝복을 비롯한 스포츠웨어의 유행에 따랐다면 위의 아이템을 몇 벌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기본템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입었을 때 편하고, 둘째, 스트리트 패션에 해당하며, 셋째, 이 옷만으로는 원마일 웨어를 완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원마일 웨어를 완성할 포인트템은? 앞서 함께 이야기했던 편하디 편한 기본템의 정반대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가죽 퀼팅 핸드백, 알록달록한 비즈나 반짝거리는 큐빅으로 이루어진 액세서리, 레이스 이너탑, 고급스러운 무늬의 셔츠 등이 있다. 이처럼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종류의 아이템을 믹스매치함으로써 원마일 웨어는 완성된다. 납득 못 하겠다면 셀린느 화보를 다시 한 번 보고 오기를 권한다.
한편 원마일 웨어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볼캡(야구모자)이다. 집 앞에 나갈 때, 변변치 않은 헤어스타일을 가리기 위해 누구나 모자를 눌러쓰지 않는가. 특히 포멀한 상의나 원피스를 입었을 때 볼캡의 무심한 매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원마일 웨어 코디 꿀팁
아무리 자유분방함이 원마일 웨어의 핵심이라지만,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옷 입는 공식대로 거울 앞에 섰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자유다. 게다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마음대로 입었다가는 패션테러리스트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원마일 웨어에 도전해보고 싶지만 조금은 부담스러운 당신을 위해, 원마일 웨어 기초 꿀팁을 공개한다.
원마일 웨어 코디, 그 첫 번째는 편안한 하의를 입는 것이다. 조거팬츠든, 반바지든, 팔락거리는 롱원피스든 상관없다. 원마일 웨어의 쇼룸에 슬림핏 진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다리 라인이 드러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신축성 있는 레깅스를 추천한다.
하의를 골랐다면 두 번째는 상의를 고를 차례다. 적당한 핏보다는 아주 타이트하거나 아주 루즈한, 즉 극단적인 핏의 상의를 추천한다. 하의와 반대되는 핏의 상의를 골라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어렵다면 상하의를 같은 트레이닝복 세트로 입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원마일 웨어의 무드를 완성하기 위한 포인트 아이템을 더하자. 당신의 엉뚱한 창의력을 발휘해볼 시간이기도 하다. 흑백톤의 운동복에 파스텔톤 핸드백을 들거나, 민소매 티셔츠에 가벼운 카디건을 걸쳐보는 등 뜻밖의 아이템을 매치해보는 동안, 어느새 나만의 원마일 웨어가 완성될 것이다.
글 : 서국선 press@daily.co.kr
공감 뉴스 © 데일리라이프 & Daily.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