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세대마다 떠올리는 것이 각기 다르다. 유소년층은 학교와 놀이터에서 직접 하던 놀이를 떠올릴 것이고, MZ세대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윗세대는 어떨까. 모두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은 놀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핵무기’를 떠올릴 것이다. 이는 1990년대에 4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김진명 작가의 소설의 영향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 소설은 다른 국가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를 남북한이 힘을 합쳐 적국으로 떠오른 일본을 향해 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은 허술한 고증과 전개, 국수주의적 사상으로 인해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모두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핵무기 보유국 대한민국’을 그렸다는 점 하나 때문에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회자되는 이유는 거칠게는 단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소설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면 꾸준히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찬성하는 목소리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은 꾸준히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인식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항상 과반이 넘는 응답자가 핵무장을 찬성하는 것으로 응답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 설문조사는 북한이 도발을 할 때에, 순순하게 우리의 요구를 듣지 않을 때에, 의도적으로 대립각을 세울 때에만 실시돼 왔다는 맹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을 배제하더라도, 우리나라 국민 중 많은 수가 핵무장을 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유엔의 핵확산금지조약
그렇다면 많은 국민들이 바라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왜 핵무장을 하지 못하는 걸까. 우리나라가 유엔 가입국이며,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핵확산금지조약(NPT, Non Proliferation Treaty)을 비준했기 때문을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외의 다른 국가가 새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 조약은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수단 4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비준한 상황이며, 북한은 1985년 가입했다가 1993년과 2003년 두 차례 탈퇴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껏 핵무기를 보유하고자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NPT 가입 이전 박정희 정권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했다. 하지만 1974년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의 압박이 ‘결정적인 제재’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거세지면서 결국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하고 1977년에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게 된다.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도 몇 차례의 핵개발 시도를 미국이 인지하고 중단에 대한 압박을 가하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관련된 연구를 원천적으로 중단하게 된다.
한국이 핵폭탄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렇듯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대한민국의 핵무장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의 요인이 있는데, 가장 직접적인 것은 매체를 통해 전해진 미국 보안 전문가의 의견 개진 보도를 꼽을 수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인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가 워싱턴포스트지에 게재한 기고문이 소스인데, 해당 글의 제목은 ‘한국이 자체 핵폭탄을 만들어야 하는가’다. 이 글에는 한미 동맹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정교해지는 핵 역량을 억지하기 위해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정당화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보수 매체를 중심으로 미국에서도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할 것을 원하고 있다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개진하는 상황이다. 물론 이 주장은 미국 정계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고,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마침 대선을 앞두고 각 유력 후보들이 다시금 대한민국의 핵무장을 화두로 꺼내는 상황과 맞물려, 이 기고문은 국내 정계에 만만치 않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북한에 맞서 핵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그림자가 다시금 우리나라 정계에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누리호가 시사하는 또 하나의 사실
만약 실제로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할 것을 공식화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는 가까이는 이란의 사례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유엔과 유엔 회원국들은 집단적으로, 개별적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에는 이란을 직접적으로 ‘악의 축’으로 지목해 맹렬하게 공격을 가하고 있다. 미국 하원과 상원은 행정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모든 나라를 경제 보복으로 처벌할 것을 명령하는 내용의 ‘포괄적 이란 제재법’을 통과시켰으며, 지속적으로 이를 통해 주변국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될 수 없다. 학계에서의 논의와는 별개로, 유엔과 미국은 필사적으로 우리나라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려 들 것이 자명하다. 이는 단순히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어서 핵무기 개발을 천명할 것이 분명한 일본, 대만, 태국 등을 겨냥한 조치이기도 하다.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는 아시아 지역은 어느 한 곳이 NPT를 탈퇴하는 순간 연이어 핵무기 개발이 이뤄질 것이 확실시되는 곳이다.
핵무기 개발의 화두에 불을 지핀 또 하나의 사건은 ‘누리호’다. 핵무기는 핵폭탄뿐 아니라, 이를 실어 나르거나 지정한 곳에 저격할 수 있는 기술이 수반돼야 한다. 지난 10월 21일 발사된 누리호는 위성모사체의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지만 목표한 고도에 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 모두가 쉬쉬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입증된 전혀 다른 곳의 진실은 우리나라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자체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대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는 국가기도 하다. 즉, 기술적으로는 이미 훌륭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저변이 마련된 상황이라고 봐도 좋은 것이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이제 소설 속에서만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됐다. 우리나라는 이미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개발해 갖출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봐도 좋다.
이미 충분한 역량은 갖추고 있다
이제 마지막 단 하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만 하면 우리는 핵 보유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핵폭탄은 쏘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으면서 ‘억지력’을 발휘하는 데에 중점을 둬야 하는 전략 병기다. 누군가를 무너트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국내외의 반발을 이겨내고, 국가 경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경제 제재를 견디며 굳이 실제로 개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핵무기는 실제로 개발하고 이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데에만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국가적인 제반 기술을 갖추고 역량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실제 핵폭탄을 보유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우리보다 앞선 위치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모든 국가가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우리가 과거 핵무기를 갈구했던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국제사회에서의 발언력이 우리가 꿈꾸는 것보다 없었고,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큰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이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고, 북한은 뭉개서 절멸시켜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대화하고 달래며 상생을 도모해야 하는 동반자의 위치에 있다. ‘두유 노 김치’를 외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문화를 가진 국가가 됐고, 코로나19 이후로는 국제사회에서 어느 곳보다도 큰 목소리를 내는 선진국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굳이 과거처럼 애처롭게 물리적인 힘을 갈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모두가 우리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때이지 않은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이제는 선진국으로서의 성숙한 면모를 보여야 할 시기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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