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새 의료기관 방문이력 있으면 동일질환 아니어도 비대면진료 가능
의협 “편의성이 진료 최우선 가치 아냐…보조적 수단으로 사용해야”
환자단체 “사실상 전면허용…완화 바람직하지 않아”…플랫폼업계 “확대 공감”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오진송 기자 = 정부가 기준을 대폭 완화해 비대면진료의 대상자를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환자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취약지와 휴일·야간대 환자의 의료접근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의료계에서는 편의성을 안전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1일 초진 비대면진료의 허용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담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방안’을 오는 15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방안에는 환자가 6개월 이내에 대면진료를 받은 적 있는 의료기관에서 ‘동일 질환’이 아니더라도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재진 중심의 비대면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실시하면서 ‘동일 질환’으로 의료기관을 다시 방문했을 때를 재진으로 보고 비대면진료를 허용해왔는데, 이날 발표한 보완방안에는 동일 질환 조건을 삭제했다.
여기에 초진부터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취약지 범위에 응급의료 취약지역을 추가하고, 야간이나 휴일에는 모든 연령대의 환자가 초진이더라도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보완 방안이 초진 환자의 비대면진료를 대폭 허용하는 데 방점을 두자 의료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는 초진 환자의 비대면진료 허용은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재진 판단 기준에 ‘동일 질환’을 삭제한 것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같은 환자가 같은 가정의학과 의원에 감기와 고혈압으로 각각 방문했다면 이 상황을 진료의 연속성이 있는 재진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의협) 대변인은 “한 달 전에 감기로 왔던 환자가 이번에 외상으로 온다고 해서 그걸 비대면진료가 가능한 상황으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의협은 그동안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와 비교해 동등한 효과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지속해서 주장해왔다.
김 대변인은 “비대면진료의 편의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의료행위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라는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편의성이 진료의 최우선 가치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꾸준히 같은 질환으로 진료를 받으시던 분이라면 비대면진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초진의 경우 비대면진료에서의 환자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면진료 시 환자가 임상 증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환자 본인 확인 절차, 타인 명의를 도용해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는 행위에 대한 방지책 등도 섬세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이날 유감을 표하는 별도의 성명을 내 “실질적으로 비대면 진료에 있어서 초진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방안과 다름없다”며 “비대면진료 확대 방안을 즉시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환자 단체는 정부의 의료 접근성 제고 시도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검증을 위한’ 시범사업에서부터 기준이 대폭 풀리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의 보완방안은 사실상 비대면진료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조치로 평가된다”며 “정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할 때 재진과 예외적 초진 허용이라는 원칙을 강조했으나 이번 발표에서 이러한 원칙이 대폭 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대면 진료는 의약계에서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고, 상업화로 인한 불필요한 의료와 의약품 오남용 등의 논란도 남아있다”며 “이를 검증하는 단계의 시범사업에서 처음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한 원칙을 정부가 계속 완화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의료 접근성 제고 차원에서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던 동일질환 요건을 폐지하고, 의료취약지를 초진부터 비대면진료가 허용되는 지역으로 추가한 건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환자의 안전성과 의료 접근성 등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 적정한 수준에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우리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좀 강화하고 편의성을 증진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많이 했다”며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오랫동안 검토했다”고 말했다.
특히 보완방안에 규정된 의사의 ‘대면진료 요구권’이 환자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봤다.
환자가 비대면진료를 원하더라도 의사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내원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 안전성 문제를 최소화했다는 설명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의사가 가까운 응급실 방문을 권유할 수도 있고, 이때 응급센터와 연결해 이송 등의 조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오히려 지금보다 개선된 형태로 환자의 중증도와 적절한 의료자원이 매칭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보완방안이 의료계가 아닌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하는 데 치우쳐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비대면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재진 환자 중심으로 비대면진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정부 기준에 크게 반발하며 비대면진료 대상자를 정할 때 초·재진 여부가 아니라 의료진의 판단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이날 발표가 산업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조심스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관계자는 “비대면진료의 효용성, 비대면 진료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며 “다만 이 효용성이 실제로 확장되려면 약 배송에 대한 규제 문제가 같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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