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2일 개봉
김성수 감독의 신작 ‘서울의 봄’이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로, 개봉 2주 차 400만 돌파를 앞두며 승승장구 중이다. 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 자택에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가 신군부 세력에 의해 납치된 그날 밤의 총성을 직접 들은 후, 꾸준히 관심과 의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현재 자신의 해석을 넣어 ‘서울의 봄’을 완성했다.
우리는 실제 사건의 주범과 상황들을 알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김 감독은 12.12 군사 반란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자신의 상상력으로 여백을 메우기 위해 이름부터 모조리 바꿨다.
“이름을 바꾼 건, 제가 다큐멘터리를 찍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건 맥락 안에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여기에는 저의 자의적인 해석과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들어갔어요. 실존 인물들의 사건들을 취재한 후 배우들과 이야기할 때도 버릇 같은 건 애초에 가져가자는 생각을 안 했어요. 다만 황정민 씨가 연기한 전두광은 영화의 핵심이자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 실존 인물의 외피를 썼으면 했죠. 그 모습이 이 이야기가 영화로 넘어가는 도약이 되줄테니까요. 정민 씨가 한 번 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안에 저는 사료를 해석하고 극화시키는 스토리텔러니, 장군들의 어쩔 수 없는 걱정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들어간 것도 있어요. 그러나 사건의 근간을 바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극화된 거니 관객들이 양해해 주지 않을까요?”
언젠간 꼭 12.12 군사 반란을 영화화 하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처음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때 고사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발목을 잡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에 받은 시나리오는 유명 작가들이 써서 완성도가 높았어요. 그러나 다큐멘터리로 압축한 느낌이었죠. 그 부분에서 흥미가 없었어요. 실제 재현하는 방식을 한다면 ‘제 5공화국’이 있잖아요. 12.12 군사 반란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서 제가 느끼는 상황과 인물들 간의 모습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절했는데 잊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김원국 대표에게 하겠다고 연락하고 제가 고치기 시작했죠.”
‘서울의 봄’은 등장인물들과 상황과 설명, 지명 등을 자막으로 설명한다. 영화의 전개와 이해를 보다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자막을 많이 넣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어요. 저는 옛날 사람이라 자막은 영화의 공간을 방해한다는 선입견이 커 최대한 적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제작사는 이 이야기를 젊은 관객들이 어려워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고려해 보니 아군과 적군의 싸움이 아닌, 같은 소속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반란과 충돌이고 피하를 구분할 수 있는 요소도 없더라고요. 또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9시간 동안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일어나니 시시각각 변화를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자막에 인색해 영화를 돕는 게 아닌 환기시키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제가 설득 당했어요. 그래서 테스트를 해봤는데 자막에 대한 거부감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부터는 적극적으로 활용해 봤어요.”
한국 근현대사가 ‘서울의 봄’의 결말이다.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지만, 관객들은 숨 죽이고 손에 땀을 쥐며 영화를 관람한다. 영화 속 메시지도 있지만 신군부와 진압군의 긴박한 대치 상황이 장르물로써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재미있기 만들려고 했어요. 옛날 사건이기도 하고 반공 영화를 많이 봐왔잖아요. 메시지만 너무 강조되는 건 원치 않았어요. 액션과 총격이 많진 않지만 긴박한 공방전이 마치 관객들을 그날로 밀어 넣고 상황을 따라가게 만들려고 했죠. 같이 달려나가듯 관람할 수 있도록 재미와 속도감에 신경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분장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배우로써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관객을 캐릭터 안에 끌어들이기 위해 분장하는 걸 고민하지 않았다.
“‘아수라’ 때 함께 작업하면서 불덩이 같단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정민 씨가 이 영화를 하기 전 연극 ‘리차드 3세’를 했다고 해서 보러 가서 깜짝 놀랐어요. 내가 생각하는 탐욕의 화신이자, 굶주린 늑대 무리 전두광 같더라고요. 인물의 싱크로율이나 태도, 성품은 무관했어요. 무조건 (황)정민 씨여야만 했죠. 정민 씨가 분장이 잘되면 ‘악의 끝판왕을 보여드리겠다’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믿었습니다.”
김성수 감독은 극중 신군부 주역 전두광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물과 물에 비유해 왔다.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전두광 앞에 휘둘리지 않고 신념으로 나아가는 이태신은 평소에도 성품이 진중한 정우성에게 부탁했다.
“과거에는 호랑이 같은 남자들이 멋있는 리더였지만, 이태신은 마초스럽고 호통치는 남자가 아니었으면 했어요. 그 시대 아버지 중에 신념을 지키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책임감이 강한 아버지들이 많았어요. 이태신을 자상하진 않지만 점잖고 근사한 아버지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성 씨가 맞을 것 같았죠. 처음에 고사해서 시나리오의 취지를 설명하며 계속 설득했어요. 관객들이 정우성을 통해 신중하고 차분하면서 신념을 지키는 이태신을 봤으면 했거든요.”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 속 역사의 비극을 과거의 이야기 일 뿐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지금의 시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현재성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제가 생각하는 현재성은 ‘이런 일은 늘벌어진다’ 입니다. 역사를 통해 보면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 합리적 절차를 거쳐 결정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언제든지 어떤 커다란 일이 우리 삶에서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벌어질 수 있어요. 상황을 직면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매번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됨됨이나 수준, 인성과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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