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년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또 다시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실형 선고로 사법리스크가 재점화된 가운데 비명계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의 탈당 선언, ‘이재명 체제 총선 불가론’을 띄운 이낙연 전 대표의 등장 등이 이 대표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비명계에서는 당 혁신의 진정성을 보여달라며 이 대표에게 험지출마까지 요구하는 상태다. 사면초가 위기에 직면한 이 대표의 고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재명, 주3회 재판 “이대로 총선 치를 수 있겠나” 회의론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달 최대 주3회에 이르는 재판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미 매주 화요일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격주 금요일 ‘대장동·위례신도시·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데 지난달 법원이 ‘위증교사 의혹’ 사건을 대장동 재판과 별도 심리하기로 하면서 재판 출석일이 추가됐다.
12월 둘째주의 경우 11일과 12일, 15일 출석이 예정됐다. 여기에 검찰이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도청 법인카드 불법 유용 의혹에 대해서도 4일 강제 수사에 돌입함에 따라 이 대표가 당무 일정을 비워야 하는 일은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이날 부산 엑스포 실패·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이정섭 검사 비위 의혹 등을 덮기 위한 ‘국민전환용 쇼’라고 규탄했지만, 검찰은 이 대표가 법인카드 유용 과정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살펴볼 예정이다.
이 대표의 재판 출석이 잦아지면서 이 대표 체제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시각도 나온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재명 대표 스스로 (거취에 대해) 판단을 해야 한다”며 “‘이러한 위치에서 당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과연 내년 총선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가’하는 것을 지도자로서 냉정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민 탈당, 대선 경쟁자 이낙연 등장
이 대표 거취를 두고 압박성 발언을 이어가는 인물 중 가장 이목을 끄는 이는 대선 경선 맞수였던 이낙연 전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SBS라디오에서 “당장 일주일에 며칠씩 법원에 가는데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당연히 함 직하다”고 직격했다.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저격하며 행보를 넓히고 있다.
최근 ‘이재명 체제’를 비판하며 탈당한 이상민 의원도 지도부에 부담이다. 다만 이 의원의 탈당이 ‘도미도 이탈’보다 ‘개인의 일탈’로 끝나는 분위기라면, 이 전 대표는 당내 ‘반이재명’ 목소리를 세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공천룰과 선거제를 놓고 비명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이 전 대표가 반이재명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인가”라며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시사한 이 대표에 맞서 이 전 대표는 “우리가 지향한 가치와 배치되는 결정을 할 때 승리할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정면 반박했다. 여기에 김부겸 전 총리와 정세균 전 총리와의 연합 전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친명 중심의 당 운영과 병립형 회귀·대의원제 축소 방침 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병립형 회귀를 시사한 이 대표를 향해 “정치적 대결구조를 심화시키는 처절한 후퇴”라고 비판했다. 또한 “민주당은 당 전체가 사법리스크 올가미에 엮여있는 데 대해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도 해 현 지도부를 에둘러 질타하기도 했다. 비명계 의원 4명으로 구성된 ‘원칙과 상식’의 행보도 주목된다. 일단 이들은 이달 중순 팬덤 정치 근절 방안 등 구체적인 개혁안을 이 대표에게 공식 요구한 뒤 답변을 보고 거취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승부사 이재명’, 험지출마 정면돌파할까
당 안팎으로 수세에 몰린 이 대표가 내년 총선까지 안정적으로 당을 이끌기 위해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주목된다. 첫번째 카드는 ‘험지출마’다. 비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당 중진들도 따를 것이라는 논리에서 이 대표에게 고향인 경북 안동 출마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친명계 한 초선의원은 “안동으로 출마하라는 것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이미 당 장악력이 탄탄한 상황에서 핵심 지지층도 원치 않는 ‘험지출마’를 단행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험지출마’는 이 대표가 특정 지역의 맹주일 때라야 의미가 있지만, 이 대표는 30~50대에서 지지를 받는 ‘세대 맹주’라는 점에서도 험지출마가 답이 될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비례대표로 출마해 소모전을 줄일 가능성도 언급된다. 사법리스크에 대응하면서 총선을 진두지휘하며, 본인 지역구까지 관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비례대표로 재선에 오른다는 복안이다. 다만 승부사 기질을 보여왔던 이 대표의 그간 행보를 보면 지역구 출마를 통해 입성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특히 여권에서 ‘대장동 일타강사’로 불리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계양을에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비례대표로 출마시 ‘빅매치’를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원 전 장관이 계양을에 출마한다고 하면 오히려 정면승부해서 분위기를 타개해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총선이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망 변화, 비명계의 이탈 및 반발 확대 가능성 등에 따라 비례대표로 출마할지는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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