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 또한 늘 공급 능력보다 많은 철강재 수요에 시달렸다. 당시 경제가 연 10%씩 지속적으로 성장하다 보니 수입품에 비해 값싸고 품질 좋은 포항제철 철강재는 수요가 많았다. 정부도 이러한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제2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 이를 계기로 현대그룹과 포항제철 간에 제2제철소 인수를 위한 혈투가 벌어졌다. 결과는 포항제철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물이 현재 포스코 광양제철소다. 훗날 박태준 회장은 이때의 승리는 여론전에서 이겼기 때문이라고 회고록에 남겼다.(이대환 지음 <박태준> 409~426쪽 참조)
그동안 현대그룹은 총 네 번에 걸쳐 일관제철 사업 진출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한보철강 인수 추진은 다섯 번째 도전이었다. 일관제철 사업의 성패는 물류(항만)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입지조건이 중요하다. 주원료인 철광석과 석탄, 부원료인 석회석 등의 수입은 물론이고 제품 수출 등으로 수심 깊은 항만이 필요하다. 한보철강이 있던 곳은 제2제철소 추진 시에도 광양과 함께 후보지로 거론됐던 곳이었다. 그만큼 입지 조건이 좋았는데, 한보가 이미 부지 조성을 하고 전기로 철강과 냉연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으니 현대가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수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현실적 필요성으로 인해 현대제철의 홍보팀 신설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고 특히 홍보팀장의 미션은 막중했다. 당시 필자는 기획팀 소속으로 있으면서 한국철강협회에 파견 근무 중이었다. 파견기간 중에 회사 복귀와 함께 홍보팀장 명령을 받아 무척 당황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홍보맨은 오장육부를 떼어서 창고에 맡겨놓고 살아야 할 정도로 힘든 업무였다. 기획팀에서 데이터와 논리로 일하던 습관은 ‘기자들의 예리한 취재에 두루뭉술하게 대처해야 하는’ 기존 홍보맨의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룹의 명운을 건 신산업 진출을 위해 팀을 신설하고 기획팀 소속의 나를 발탁한 이유가 있는바, 기존의 홍보 스타일을 답습할 수는 없었다. 적절한 조화를 통한 새로운 홍보맨의 역할이 필요했다.
다행히 유능한 후배들과 정부 기관은 물론 사회 각계의 시민단체와 맺은 인연들, 기존 홍보맨 스타일과 다른 시도를 애정 어린 격려로 지지해 준 기자분들 덕분에 퇴임 때(2020년)까지 홍보 업무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 사이 회사는 당진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운영하면서 매출액 2조6000억원에서 27조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공은 오늘날 현대자동차·기아가 세계 3대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인하우스(In House) 제철소를 가지게 됨에 따라 신차 개발에 필요한 자동차 강재 개발시간을 2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게 됐다. 또한 자동차 강판을 비롯한 고급 철강재 공급 경쟁체제는 자동차, 조선, 기계공업, K방산 등 한국경제가 G10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회사의 성장 = 국가의 성장 = 나의 성장>이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다. 다만 이러한 성장이 우리 ‘사회의 성장(발전)’과는 괴리가 있었다. 이러한 괴리는 필자가 퇴직 후 ‘ESG 경영’을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이 시리즈 연재를 통해 성장의 과정을 공유하고 괴리의 원인과 해법을 같이 고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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