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신기”·”급정거 멀미”…”또 탄다” 일단 ‘합격점’에 개선과제도
한밤 올빼미족 태워 합정∼동대문 오간 심야A21번…시, 안정화 거쳐 확대
(서울=연합뉴스) 최윤선 기자 = “버스가 좀 느리긴 한데 스스로 운전한다니 신기하죠. 일이 늦게 끝나서 매번 오래 기다렸다가 N(나이트·심야)번 버스를 탔는데 집에 가는 노선이 하나 더 생겨서 좋아요.”
4일 오후 11시30분께 서울 마포구 합정역 버스정류장에 처음 보는 ‘심야 A21’이라는 ‘이름표’를 단 버스가 등장했다. 늦은 밤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 5명이 기대와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이 ‘뉴페이스’는 서울시가 새로 도입한 심야 전용 자율주행버스다.
서울시는 이날부터 마포구 합정역에서 종로구 동대문역을 잇는 심야 자율주행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대학가, 대형 쇼핑몰 등이 밀집해 심야 이동 인구가 많은 구간을 오간다.
미국 등에서는 야간에 자율주행택시(로보택시)가 운행한 사례가 있지만, 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기능을 맡은 심야 전용 자율주행버스를 정기 운행한 사례는 세계 최초라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자율주행버스 2대는 오후 11시30분 합정역과 동대문역에서 각각 출발해 70분 간격으로 중앙 버스전용차로 구간 9.8㎞를 순환한다.
운행 시간은 평일 오후 11시30분∼다음 날 오전 5시10분이며 운행 구간 내 40개(편도 20개) 중앙 정류장에서 일반 시내버스와 동일하게 승하차할 수 있다.
버스는 모든 승객이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 자율주행 모드로 정류장을 떠났다.
앞서 ‘만석’ 상태에서 버스에 오른 시민 2명은 운행을 지원·점검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아있던 ‘시험 운전자’가 안전상 이유로 입석은 금지되니 다음 버스를 타달라고 양해를 구해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자율주행버스는 시내버스와 동일한 규격으로, 현대차 일렉시티를 개조한 대형 버스다.
다만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전 좌석 안전벨트 설치, 입석금지, 당분간 취객 대비 및 버스의 완전한 정차 뒤 하차를 유도하기 위한 특별안전요원과 시험운전자 추가 탑승(2명) 등 안전대책이 적용됐다.
버스 출발과 함께 “서울시 자율주행 버스에 탑승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안전을 위해 전 좌석 안전벨트를 착용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차량 통행이 적은 심야 시간대인 만큼 옆 차로에선 택시와 시내버스가 속도감 있게 지나갔지만, 자율주행버스는 앞선 차량과의 거리를 조절하며 30∼40km/h의 속도를 유지했다.
버스는 홍대입구역에서 신촌역으로 이어지는 커브 구간에서도 흔들림 없이 부드럽게 회전했다.
이날 버스에 함께 탄 유진수 서울대 기계공학과 연구원은 “커브 구간에서는 곡률을 고려해 감속하게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며 “버스 평균 속도는 40km/h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버스를 타기 위해 종로구 명륜동에서 합정역을 찾았다는 대학 휴학생 김예린(21)씨는 “처음에는 신기해하다가 중간 구간부터는 ‘그냥 일반 버스를 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급정거하는 경우가 몇 번 있어 멀미가 났는데 그 부분만 개선된다면 일반 버스와 차이 없이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와 함께 버스에 오른 대학생 길성호(27)씨는 “승차감이 조금 더 부드러웠다면 좋았겠지만 일반 버스를 타도 급정거하는 경우는 있기 때문에 자율주행이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 씨는 “다만 중간에 이대역에서 서대문역까지 버스 내 모니터에 현재 위치와 신호등 표시가 잘못 표시됐는데 이게 실제 운행이랑 연동되는 건지 모니터에만 잘못 뜬 건지 모르겠다”며 “안심하고 타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보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율버스의 ‘불청객’인 취객에 대한 우려를 표한 시민도 있었다.
마포구 합정동에 거주하는 김재철(47)씨는 “아까도 입석이 안 되는데 타려고 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느냐”며 “물론 안내요원이 입석이 불가능하니 하차하라고 안내하겠지만 취객이면 얘기가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5일 오전 0시 40분 버스는 마지막 정거장인 동대문역까지 총 9.8km를 주행하고 다시 합정역 방향으로 달렸다.
시민들은 시험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버스 자율주행을 지켜보는 모습과 차 안의 모니터에 뜬 자율주행 모드 정보 등 낯선 자율주행버스의 풍경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동승한 자율주행버스 운영사 에스유엠(SUM) 관계자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며 호기심을 보이는 승객도 있었다.
일이 늦게 끝나 매일 N버스를 타고 귀가한다는 박이순(67)씨는 “보통은 버스를 꽤 기다려야 하는데 먼저 도착한 (자율주행) 버스에 아현역에 간다고 적혀 있길래 타봤다”고 말했다.
박 씨는 “버스가 살짝 느린 것 같고 안전벨트 하는 것도 낯설게 다가온다”면서도 “자율주행이라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N 버스는 요금이 비싼데 이 버스는 당분간 무료라고 하니 앞으로도 귀가할 때 자주 타겠다”고 향후 탑승 의사를 밝혔다.
회사원 조범상(32)씨는 “버스 내 모니터에 현재 주행 속도나 센서로 인식되는 다른 차량의 정보가 떠서 흥미로웠다”면서 “평소 야근이 잦아서 오전 0시 넘어서 N 버스를 탈 때가 많은데 심야 A21번이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기다렸다가 타겠다”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울시는 심야 A21번 버스를 당분간 무료로 운영하면서 운행 안정화 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으로 유료로 전환할 계획이다.
나아가 운행구간 연장과 함께 도심과 시 외곽을 연결하는 장거리 운행 자율주행버스를 정규 노선화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ys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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