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명실상부 우주 강국으로 올라섰다. 발사체 제작과 발사 운용 능력에 대한 대내외 신뢰도도 크게 높아졌다. 한국이 발사체 상용 발사 서비스 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향후 우주산업 개발의 핵심인 재사용 발사체 기술은 아직 갈 길은 멀다. 세계 최고의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지닌 스페이스X를 따라잡으려면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스페이스X와의 기술 격차 ’20년’
지난 5월 25일 오후 6시 24분 우주를 향해 쏘아 올려진 세번째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쳤다. 누리호의 정상적인 비행은 물론 우주발사체의 임무인 위성의 궤도 안착이 성공하면서 한국은 자체 우주발사체 기술 역량을 실질적으로 입증했다. 3차 발사는 성능검증 위성이나 위성 모사체가 아닌 실용위성을 탑재했다는 점에서 ‘첫 실전 발사’라고 불린다. 1·2차 발사에서 발사체 제작과 발사 기술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다면 3차 발사에선 위성 사출 기술도 확보하게 됐다.
이러한 누리호의 성공에 전 국민이 환호했지만, 우주 강국 도약과 산업 생태계 조성까진 갈 길이 멀다는 게 민간·학계 전문가들의 평가다. 누리호는 1회만 사용할 수 있는 소모성 발사체다. 그동안 소모성 발사체의 높은 발사 비용은 우주 산업 활성화의 장벽으로 여겨져 왔다. 소모성 발사체를 사용해선 이익을 창출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잘 나가는 발사체 업체의 발사 서비스도 연간 5~6회 정도 수준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누리호는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낮은 평가를 받는다. 발사체의 경쟁력은 우주로 쏘아 올릴 인공위성 무게 1kg당 비용으로 결정된다. 스페이스X의 경우 팰컨9 발사체의 1단부를 재사용해 1kg당 발사 비용을 평균 2700달러로 낮춰 전 세계 발사 서비스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1단 추진체는 간단한 정비로 최대 10회까지 재사용할 수 있고 전체적인 재정비로 100회까지 재사용할 수 있다. 반면 누리호는 개발비를 제외한 1kg당 발사 비용이 팰컨9의 10배가 넘는 3만2500여달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스페이스X의 기술력을 따라잡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지난해 8월 낸 ‘발사체 재사용 기술 확보를 위한 탐색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한국의 기술 수준과 연구개발(R&D) 상황을 고려할 때 2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발사체 재사용 기술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다.
기존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엔진 재점화 기술 등 기초기술 연구가 진행됐고, 정부의 스페이스 챌린지 사업에서 유도항법제어기술이 개발되는 등 일부 발사체 재사용 기술이 연구되긴 했다. 그러나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서 보류 판정을 받는 등 시연체 개발을 통한 재사용 기술 확보 노력이 전체적으로 부족했다.
항우연은 재사용 발사체 개발을 위해선 귀환 비행용 유도제어, 착륙 시 방향 제어·안정성 확보를 위한 그리드 핀, 착륙장치, 재사용 엔진, 열 보호, 페어링 재사용, 착륙지원 지상 시스템·운용 등 다수의 까다로운 핵심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정부 주도에서 벗어난 인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우주 사업은 정부 주도로 하다 보니, 실수에 대해서 용납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시행착오가 필연인 이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스페이스X를 따라잡기 어려운 이유”라며 “민간 기업체든, 관이든 사람을 뽑아서 자유도를 줘야 한다. 스페이스X가 이뤄낸 업적들은 일론 머스크가 세계적인 로켓 엔지니어 톰 뮐러를 영입해 거의 전권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국내 위성 기술은 수준급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위성 기술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지난 5일 국내 최초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민간 주도의 상용 지구관측 위성이 자체 발사에 성공했다. 한화시스템이 자체 개발·제작한 ‘소형 SAR(지구 관측) 위성’이다.
이번 위성 발사는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위성 제조·발사 분야의 국내 기술력을 증명해낸 것으로, 우주 강국들이 기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출을 통제해왔던 분야에서 국내 첫 국산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현재 한화시스템은 용인연구소 위성관제센터에서 위성과 지상 기지국과의 첫 교신을 대기 중이다. 회사는 소형 SAR 위성을 활용해 B2G(기업과 정부 간 거래)·B2B(기업 간 거래)용 ▲고해상도 위성 이미지 분석을 통한 환경 모니터링 ▲GIS(지리정보시스템) 지도 제작을 위한 데이터 분석 ▲위성 영상 정보를 자동 융합·분석해 다양한 부가 가치를 창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2일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항우연이 협업해 제작한 ‘425 EO/IR(광학·적외선) 위성’이 스페이스 X사의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다. 우리 군의 정찰위성 1호기다. 내년부터 순차 발사 예정인 정찰위성 2호기에는 SAR 탑재체도 장착될 예정이다.
국방과학연구소와 항공우주연구원, KAI는 지난 2018년부터 꾸준히 EO/IR·SAR 군용 정찰위성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정찰위성 체계개발이 완료되면 우리 군은 주요 관심 지역의 관측자료를 수 시간 수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렇듯 한국의 위성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2년 우리별 1호 발사 당시만 해도 한국은 영국 대학 연구소를 찾아가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워가며 위성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는 초고해상도 위성인 ‘아리랑’과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 등 위성을 자체 개발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지금까지 한국이 만들어 쏘아 올린 위성은 20여 기에 이른다. 정부는 2027년까지 다목적 실용 위성 2기, 차세대 중형 위성 4기, 100㎏급 초소형 군집 위성 11기를 발사·운용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위성 기술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지난 10월 저궤도 위성통신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사업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했다. 2025년부터 2031년까지 480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저궤도 위성통신 체계를 개발해 2030년 핵심 기술을 자립화하는 게 목표다.
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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