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주택 공급에 민간 경쟁체제 도입을 추진한다. 그동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독점하다시피한 연 10조원대 공공주택 사업을 민간에 개방해 LH의 힘을 빼겠다는 구상이다. 또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재취업 시 심사를 받아야 하는 LH 퇴직자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입찰 제한 등이 적용되는 LH 퇴직자 근무 기업의 숫자도 크게 늘리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LH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지난 4월 인천 검단 LH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이 철근 누락으로 붕괴되고, 이 같은 부실이 전관예우 등 LH의 이권 카르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LH 혁신안을 마련해 왔다.
국토부는 우선 민간 기업의 공공주택 사업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동안 공공주택 사업은 LH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LH 같은 공공만 공공주택사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LH는 공공주택 공급량의 72%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지방공사가 공급한다. 설계·시공·감리 등 LH의 발주 규모는 연간 10조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LH에 부여된 공공주택 공급 규모가 해마다 확대되면서 건설 과정에 대한 관리 소홀, 부실 감리와 품질 저하의 악순환이 나타났다는 게 정부 진단이다.
LH가 공급한 공공주택 물량은 2013∼2017년 26만4000가구, 2018∼2022년은 28만4000가구다. ‘5년간 270만가구’ 공급 계획을 발표한 현 정부의 공급 정책도 상당 부분을 LH에 기대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LH 독점’이 공공주택의 품질 저하를 불렀다고 보고 공공주택법 개정을 통해 공공주택 사업권을 민간에 개방하기로 했다.
먼저 현재 LH가 단독 시행하거나 LH와 민간건설사가 공동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민간 단독으로도 시행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시행권을 놓고 LH와 민간 건설사를 경쟁시켜 우수한 사업자가 더 많은 공공주택을 공급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국토부는 향후 입주자 만족도 등 평가결과를 토대로 ‘더 잘 짓는 시행사에 더 많은 물량’을 준다는 원칙을 적용할 방침이다.
김오진 국토부 1차관은 “지금껏 독점적 지위에 있던 LH가 품질과 가격 경쟁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해 자체 혁신을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단 분양가와 공급기준 등은 현 공공주택과 동일 기준을 적용해 공공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정부는 주택기금 지원과 매입 약정을 통하면 리스크가 줄어드는 만큼 분양가 인상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현환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주택기금을 저리로 지원하고 건설사 입장에서 분양이 안될 땐 일정부분을 매입약정을 해주면 리스크도 줄고 공공분양 주택가격도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계·시공·감리업체를 LH가 직접 선정하던 현행 체계도 개선한다. LH가 업체를 직접 선정하다 보니 전관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전관업체의 수주로 연결되는 카르텔 구조가 형성됐다는 판단에서다.
앞으로는 설계·시공업체 선정 권한은 조달청에, 감리업체 선정 권한은 국토안전관리원으로 이관한다. 이를 통해 이권 개입을 차단하고, 품질·가격 중심의 공정경쟁을 유도한다는 목표다.
고질적 문제로 꼽히던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전관업체는 진입 자체를 막는다. 2급(부장급) 이상으로 퇴직한 전관이 퇴직한 지 3년 이내에 재취업한 업체(출자회사 포함)는 입찰 참가를 제한한다. 3급 이상 전관 재취업 회사는 낙찰이 어려운 수준으로 대폭 감점한다.
퇴직자 재취업 심사 대상 기존 ‘2급이상'(퇴직자 30% 수준)에서 ‘3급 이상'(퇴직자 50% 수준)으로 확대하고 회사 자본금·매출액 기준도 삭제 및 완화했다. 이에 따라 전관 근무 여부 모니터링 대상 업체는 200여개에서 4400여개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아울러 LH가 설계하는 모든 아파트는 착공 전 구조설계를 외부 전문가가 검증하고, 구조도면 등 안전과 직결되는 항목은 대국민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공개할 계획이다. 또 LH 공사·용역에서 철근배근 시공불량, 설계도서와 다른 시공 등 안전관련 주요 항목 위반으로 벌점을 부과받은 경우, 일정기간 입찰을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한다.
김오진 1차관은 “건설안전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에 직결되는 사안”이라면서 “LH 전관과 건설 카르텔을 반드시 혁파하여 카르텔의 부당이득을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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