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유족 중심 조용히 치러지다 영화 계기로 관심 커져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형을 죽인 반란군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고(故) 정선엽 병장 44주년 추모식이 열린 12일 오후 고인의 모교 광주 북구 동신고등학교에서 만난 동생 정규상(64) 씨는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동문회가 교정에 심은 소나무를 말없이 바라보는가 하면 나무 옆 형의 이름이 새겨진 안내판을 연거푸 쓰다듬었다.
형이 죽은 지 40여년이 흘러 기억은 희미해졌다면서도 그는 “명확한 건 형은 의롭고 의협심 많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정씨가 기억하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은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기 2개월 전인 1979년 10월이다.
전역까지 3개월여를 앞둔 형은 휴가를 나와 집을 찾았고, 당시 형이 입고 있던 군복과 “어머니께 잘해야 한다”는 형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후 부대에 복귀한 고인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1979년 12월 13일 오전 1시 40분께 사살당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연결하는 지하 벙커를 사수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는데, 벙커를 점령하기 위해 들이닥친 1공수여단 소속 반란군의 총탄에 숨졌다.
정씨는 “총을 뺏으려는 반란군에 형이 맞서며 저항한 것 같다”며 “형이 죽었다는 소식은 전사 통지서를 통해 곧바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모든 사람이 반란군의 전횡을 알게 된 지금, 형의 죽음은 떳떳하다”고 강조했다.
고인을 기억하기 위해 동신고 총동창회는 44주년 정선엽 병장 추모식을 모교에서 열었다.
추모식은 해마다 소나무 앞에서 간소하게 열렸으나 정 병장의 삶이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자 올해는 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겨 열렸다.
개회 선언으로 시작해 추모 묵념, 고인에 대한 보고, 총동창회장·교장·조오섭 국회의원 추모사 등이 이어졌다.
이노범 총동창회장은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정 선배님을 기억한다”며 “불의에 저항하고 물러나지 않는 선배님의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da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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