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박5일에 걸친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 네덜란드와의 경제 협력을 다변화하는 한편, 반도체 동맹을 통해 주요 우방국들과의 반도체 공급망을 완성했다는 평가다.
14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서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기관 간(13건), 기업 간(19건) 계약 및 양해각서(MOU) 총 32건이 체결됐다.
양국은 이번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경제안보대화 신설, 정보교환 네트워크 구축 등 경제안보협력과 핵심품목 공급망 협력 분야 뿐만 아니라 원자력, 무탄소에너지, ICT,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계약·MOU를 맺으며 협력 분야를 넓혔다.
특히 양국이 맺은 원전 분야에서의 계약 및 MOU도 3건이나 된다. ▲정부 간 ‘원전협력 MOU’ ▲한국수력원자력과 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부 간 ‘신규 원전 기술타당성조사 계약’ ▲한전원자력연료와 현지 컨설팅기업 뉴클릭(NUCLIC) 간 MOU 등이 체결됐다.
이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과 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부 간 맺은 계약은 노형 안정성과 기술요건은 물론 부지 적정성, 현지화 수준 등 규정을 조사하는 게 골자다. 한전원자력연료와 뉴클릭이 맺은 MOU도 ‘네덜란드 신규원전 건설 규제정보 공유 및 인허가 획득을 위한 협력’을 기반에 뒀다. 한국기업의 신규진입을 위한 현지 정보 공유를 통해 경쟁사보다 입찰 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고, 원전 내 다양한 분야로 진입하는 게 수월해진 셈이다.
204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을 선언한 네덜란드는 2035년 완공을 목표로 1000㎿급 신규 원자력 발전소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제일란트주 보르셀 원전 단지에서 원자로 1기가 가동 중으로 신규 원전 부지는 보르셀이나 로테르담 등이 거론된다.
윤석열 정부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2027년까지 약 5조원의 해외원전 설비 프로젝트 수주를 목표로 하는 만큼 이번 MOU는 네덜란드 시장 공략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마르크 뤼터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원전 협력에 시동을 걸었다.
첨단산업, 무탄소에너지, 물류,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기업·기관간의 계약·MOU도 이뤄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은 EZK(네덜란드 경제기후정책부)와 ‘신규 원전 도입을 위한 기술타당성 조사 수행’을, 롯데정밀화학과 OCI-Global(화학제품 제조기업)은 ‘청정암모니아 공급 및 암모니아 저장 인프라 관련 업무 협력’, ㈜이솔은 ISTEQ B.V.(광원 개발 기업)와 ‘차세대 EUV 광원 공동개발 및 상용화’, ㈜지플러스생명과학은 Bayer AG(제약 및 바이오기술 기업)와 ‘비타민D 고함량 토마토 기술 이전 계약 및 공동연구 협력’을 맺었다.
윤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크라스나폴스키 호텔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비즈니스 포럼에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달성을 위해 원전, 수소, 해상풍력 등 무탄소 에너지 분야에서의 양국 간 협력 잠재력이 크다”며 “네덜란드 신규 원전 사업에서의 양국 간 협력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 최대 성과로는 ‘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이 꼽힌다. 윤 대통령은 국빈 일정 첫날인 12일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벨트호벤에 있는 ASML 본사를 방문했다. 이들은 ASML의 클린룸을 함께 방문해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 현장을 시찰했한 후 피터 베닝크 CEO, 증착 장비를 생산하는 ASM의 벤자민 로 CEO, 연구기관 IMEC의 루크 반 덴 호브 CEO 등과 간담회를 갖고 3건의 MOU 서명식에도 참석했다.
당시 체결된 MOU를 살펴보면, 먼저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인력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양국 정부(한국 산업통상자원부-네덜란드 외교부)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활용해 양국 대학원생에게 현장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한-네덜란드 첨단반도체 아카데미’를 신설하는 협력 MOU를 맺었다. 첨단반도체 아카데미는 양국에서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내년 2월 네덜란드에서 첫 번째 교육이 시작할 예정이다.
ASML은 삼성전자와 함께 1조원을 투자해 차세대 EUV 기반으로 초미세 공정을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R&D센터’를 한국에 설립하는 MOU도 체결했다. 장비기업인 ASML이 반도체 제조기업과 공동으로 해외에 반도체 제조 공정을 개발하기 위한 R&D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하이닉스 역시 ASML과 ‘EUV용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개발 MOU’를 체결했다. EUV 장비 내부의 수소를 태우지 않고 재활용할 경우, 전력 사용량은 20% 줄고 연간 165억원의 비용이 감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윤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총리가 13일 개최한 한-네덜란드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일반적인 경제 협력의 의미가 아닌, 공급망 위기 발생 시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지원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특히 양국은 기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고자 외교-산업장관급이 참여하는 이른바 ‘2+2 대화체’를 신설해 격년으로 회의를 갖기로 했다.
특히 올해 미국, 일본, 영국 순방에 이어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통해 우방국들과의 반도체 공급망 연대를 완성해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리스크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했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현지 브리핑에서 “양국의 ‘반도체 동맹’을 명문화하면서 정부 간 반도체 협력 채널을 신설하고 핵심 품목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설계에서부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제조로 이어지는 전 주기를 연결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동맹이 완성됐다”고 평가했다.
암스테르담=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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