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정규 앨범 발표…암스테르담서 재즈 피아니스트 롭 반 바벨과 녹음
“김민기는 음악 스승…첫 콘서트한 학전 폐관에 고향 사라지는 느낌”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재즈 피아니스트 롭 반 바벨과 음악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8월의 암스테르담, 정말 꿈처럼 아름다운 시간이었죠.”
싱어송라이터 권진원은 올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방학을 이용해 올해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찾아 9번째 정규 앨범을 녹음했다.
그가 머나먼 암스테르담까지 날아간 이유는 바로 네덜란드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롭 반 바벨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권진원은 데뷔 38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악기를 배제한 채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와 피아노만으로 아홉 곡을 완성했다.
권진원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여러 앨범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보컬과 피아노 듀오 앨범’이라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는 낮은 목소리로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만남을 가슴에 품고 노래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9번째 정규앨범 ‘권진원 위드 롭 반 바벨'(Kwon Jin Won with Rob Van Bavel)에는 타이틀곡 ‘난 그대를 생각해’를 비롯해 신곡 ‘가을비’, ‘그 장소에 갔던 것도’, ‘너는 내 안에서 반짝인다’와 기존에 싱글로 발표한 ‘사월, 꽃은 피는데’와 ‘나란히 걸어 갑니다’, ‘봄이 될 거야’ 등 아홉 곡을 담았다.
권진원은 2주간 머물며 암스테르담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들 곡을 녹음했다. 롭 반 바벨은 영어로 해석한 가사지를 피아노 앞에 두고 노랫말에서 받은 영감을 손가락 끝에 실어냈다.
두 사람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서로의 음악을 깊이 이해했고, 끊김이 없이 ‘원 테이크'(곡 전체를 한 번에 연주하는 방식)로 여러 차례 녹음해 가장 좋은 트랙을 골랐다.
권진원은 “몇 년 전부터 보컬과 피아노로 구성된 앨범을 생각하며 곡을 썼다”며 “이번 곡과 어울리는 피아니스트를 찾다가 롭 반 바벨의 앨범을 듣고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우리나라 수묵화에서 보이는 ‘여백의 미’와 통하는 바로 그러한 아름다움이요.”
보컬과 피아노의 단출한 구성이지만 앨범에 담아낸 선율과 노랫말의 깊이는 절대 밋밋하지 않다.
타이틀곡 ‘난 그대를 생각해’만 해도 그렇다.
권진원은 ‘난 그대를 생각해’라는 가사를 반복하면서 ‘고마워’, ‘행복해’, ‘응원해’, ‘미더워’, ‘아름다워’ 등 ‘그대’에서 파생되는 따스한 감정을 술술 풀어냈다. 내공이 깃든 보컬에 피아노 연주가 더해지면서 듣는 이에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선물했다.
그는 “참 신기하다. 저와 같이 음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딸을 생각하며 만든 곡인데,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매번 달라진다”며 “고마운 나의 사람들, 그 이름들…. 각기 다른 모양의 사랑들이 마음에서 반짝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진원은 이 노래와 앨범을 통해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가족, 서울예대 학생들, 그리고 고마움을 느낀 모든 주변 사람으로 넓혀가는 듯했다.
그가 언급한 딸은 이달 초 결혼식을 올렸다. 이번 앨범의 믹싱과 마스터링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단다. 자녀의 결혼과 앨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니, 올 하반기 너무나 바빴다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딸이 결혼하다니 행복하면서도 가슴이 아릿했어요. 인생의 한 챕터가 넘어가고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이번 앨범에는 권진원의 대표곡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와 ‘푸른 강물 위의 지하철’도 피아노 연주를 곁들여 리메이크돼 반가움을 더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는 연말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흥겨운 재즈풍으로 바뀌었다. ‘푸른 강물 위에 지하철’도 ‘참 오랜만에 만났죠 학교 시절 친구들…저 멀리 대교 위로 하루 해가 질 때 내가 가지 않은 그 모든 길이 하나둘 생각나’ 라는 가사가 절묘하게 송년회 시즌과 맞물려 듣는 이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권진원은 “나에게는 그 ‘대교’가 동호대교였는데, 누군가에게는 한남대교, 또는 당산철교 또는 양화대교일 것”이라며 “흐르는 강물을 보며 지나온 날들을 떠올리는 것은 굉장히 보편적인 정서 같다”고 말했다.
그는 1985년 강변가요제로 데뷔해 1988∼1991년 노래를찾는사람들을 거쳐 1992년 솔로 1집 ‘북녘 파랑새’를 냈다. 올해로 데뷔 38년을 맞은 그는 특히 내년 3월 폐관을 앞둔 대학로 소극장 학전과 인연이 깊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생 선생님이 학생들의 노래 요청에 김민기(학전 대표) 선배의 ‘친구’를 불렀는데, 가사가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또 2학년 때는 어느 선생님이 교내 방송으로 ‘상록수’를 틀었는데, 노래의 울림에 감동한 기억이 있어요.”
권진원은 “1995년 저의 첫 단독 콘서트가 열린 곳도 학전이었다”며 “제게 김민기 선배는 커다란 나무, 학전은 비바람을 막아준 큰 우산 같은 존재”라고 떠올렸다.
그는 내년 3월 학전 폐관을 앞두고 릴레이로 열리는 공연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저는 항상 김민기 선배를 제 음악적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학전이 문을 닫는다니, 음악적 고향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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