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제3지대 신당 창당을 공식화한 이낙연 전 대표가 18일 예정된 영화 시사회에서 만날 것으로 기대됐지만, 일정이 엇갈려 결국 불발됐다. 이 대표와 이 전 대표의 이른바 ‘명낙회동’은 무산됐지만, 이 대표는 향후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와는 별도로 ‘연쇄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당내에서 거세지는 ‘이낙연 신당’ 비판에 힘입어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견제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당 통합을 위해선 ‘압박’보다는 ‘화합 행보’를 보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신당 창당을 둘러싼 당내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리는 ‘길 위의 김대중’ VIP 시사회에 참석해 함께 초청된 김부겸 전 총리를 만났다. 이 대표는 김 전 총리를 만나 “김대중 대통령께서 지킨 민주주의 길을 김 전 총리와 잘 지켜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사회에는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 김동연 경기도지사,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씨와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김한정 민주당 의원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초청을 받았지만, 일정상 이유로 이 대표와 같은 시간대가 아닌 저녁 일정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이 전 대표가 만남을 갖고 추후 ‘신당 창당’과 관련해 의견 교류에 나서면서 당내 갈등 기류를 잠재워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날 만남이 불발되면서 회동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졌다.
이 대표는 이날 만남과는 별개로 오는 20일 김 전 총리와 회동을 갖는다. 28일에는 정세균 전 총리와도 만날 예정이다. 두 전 총리로부터 선거제 개혁과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이 대표 행보에 ‘총리 연대설’을 부른 이 전 대표를 고립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낙연 신당’을 둘러싼 당내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당 원외 혁신기구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은 민주당의 역사와 민주적 절차를 부정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엄중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앞서 ‘신당 창당설’이 불거졌을 때도 이들은 이 전 대표의 ‘정계 은퇴’를 촉구한 바 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이 전 대표가 주장하는 신당 창당의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신당 창당의 이유가) 양극화된 정치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전 대표는 대표 시절에나 그 이후에도 정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다”면서 “지친 마음에 정치계를 떠나겠다는 이유라면 몰라도 신당 창당을 하는 이유가 되긴 어렵다”고 짚었다. ‘정치 양극화’라는 신당 창당의 이유가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욕망을 숨길 ‘거짓 명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대화와 타협, 공존의 정치로 지금의 양극화된 정치를 바꾸려는 세력은 이재명 대표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 대표 취임 후 윤석열 정권의 폭정으로 민생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과 함께 야 4당이 꾸준히 입법 공조를 해왔고 윤 대통령에게 8번의 영수 회담을 제안했다”면서 “정치 양극화의 책임은 끝까지 제1야당 대표를 중범죄자 취급을 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물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치적 가치나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하면서 오직 ‘반명’이라는 주장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아무런 정치적 명분도, 근거도 없는 신당 창당은 결국 이 전 대표의 헛된 정치적 욕망”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인 강득구·강준현·이소영 의원 등은 지난 14일부터 당내 의원들에게 이 전 대표의 신당 추진을 만류하는 내용의 연서명을 받고 있다. 계파를 불문하고 다양한 의원들이 이름을 올린 가운데 지금까지 100여명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이번 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반대에 대한 성명서 내용을 밝힐 계획이다.
앞서 15일 민주당 내 최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도 기자회견에서 “(이 전 총리는 창당으로) 민주당을 위기에 빠트릴 게 아니라 윤석열 정권 심판에 앞장서야 한다. 신당 창당 선언을 철회해달라”고 공개 요구했다.
‘이낙연 신당’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 대표가 이 전 대표를 직접 만나 통합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용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분열의 상징이 될 신당 추진을 비판하지만, 분열의 과정을 손 놓고 지켜만 보는 지도부의 수수방관 태도도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 대표가 이 전 대표를 만나고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 4인도 당장 만나라”며 “이 전 대표와 ‘원칙과 상식’의 목소리를 분열의 틀로만 보지 말고 총선 승리를 향한 걱정의 관점에서 바라봐달라”고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인 이철희 전 의원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초선 의원들이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을 만류하는 연서명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이 전 대표가 언급한) 문제 제기가 뭔지, 그 문제 중에 상당 부분이 옳다면 수용해서 해소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이 ‘그냥 잘못했다, 그만해라’라고 하는 게 과연 같은 당의 유력한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인가. 너무 배제 지향적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나가라는 것밖에 더 되나. 설득할 때는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이 전 대표도 좀 서두르고 명분 제시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당내에서 다루는 방식도 저렇게 하면 안 되고 이재명 당대표도 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내 비주류 의원 모임 ‘원칙과상식’도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이 전 대표가 왜 신당까지 결심하게 됐는지 생각해보는 게 예의”라며 이 대표를 압박했다. 이들은 초선 의원들의 연판장 소식에 “거칠게 비난만 하면 골은 깊어지고 분열은 기정사실화 된다”면서 “송영길 전 대표, 추미애 전 대표, 조국 전 장관도 신당을 말하고 있지만 이낙연 신당설처럼 비난하고 연서명 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낙연 신당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은 연서명 압박이 아닌 통합비대위로의 전환”이라면서 “이재명 대표가 당의 분열을 막고 총선에서 승리하길 원한다면 당대표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선당후사를 결단해 통합비대위로의 전환을 서둘러 달라”고 말했다.
당내 갈등이 또다시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우려되자, 그동안 ‘명낙회동’에 미온적이었던 당 지도부도 변화된 모습이 엿보인다. 이날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오전 회의 후 ‘이 대표와 이 전 대표 만남 추진’에 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고 답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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