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2024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여야 지도부 등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가 이목을 끌고 있다.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정부와 총선을 앞둔 국회의 줄다리기 속에 내년도 예산안의 총 지출액은 3000억원가량 줄었지만,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예산은 되레 늘어나거나 새롭게 신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출마 선거구 사업을 ‘쪽지 예산’으로 챙긴 사실을 공개하는 사례도 있었다.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총 지출액은 정부안보다 3000억원가량 줄어든 약 656조6182억원이다. 총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있지만, 건전재정을 강조하며 허리띠를 졸라 맨 정부 기조에 따라 여야는 순증 대신 불필요한 예산을 약 4조2000억원 걷어내고, 그 만큼을 필요한 곳에 배분하는 막판 협상을 거쳤다.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 이상섭 기자 |
최종적으로 증액된 예산 내역에는 여야 지도부 및 핵심 인사들의 지역구 사업이 다수 포함됐다. 국민의힘의 경우 예산 심사가 이뤄질 당시 당대표였던 4선 김기현 의원(울산 남을)의 지역구에서 7개 사업 예산 총 118억9200만원이 늘었다. 울산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37억5000만원), 울산 트램 1호선 건설(27억4200만원), 울산 석유화학산단 안전관리 고도화 플러스(25억원) 등 모두 정부안에 없었으나 신설된 사업들이다. 재선의 이만희 사무총장(경북 영천·청도) 지역구에서는 영천대창일반산단 진입도로 건설 사업 예산이 25억원, 영천시 하수관로 정비사업이 19억3400만원 늘어나는 등 6개 사업에서 총 61억5400만원이 증액됐다.
재선 이철규 의원(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의 지역구에선 태백시 분뇨처리시설 개량(11억3200만원), 태백시 장례시설 신축 사업(10억7000만원), 동해 묵호항 국제여객터미널 신축 이전(10억원) 등 9개 사업에서 총 58억9200만원이 늘었다. 직전 사무총장이자 현 인재영입위원장인 이 의원은 대표적인 친윤 인사로 분류된다. 3선의 윤재옥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지역구에서는 지방보훈회관 건립(2억5000만원), 국산목재 목조건축 실연(2억5000만원) 등 3개 사업에서 6억5000만원이 증액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환경부 비점오염저감(3억5400만원), 노후하수관로 정비(3억) 등 3개 사업에서 총 7억5400만원이 늘었다. 홍익표 원내대표가 출마 의사를 밝힌 서울 서초을의 경우 예술의전당 리모델링 사업 예산이 10억원 증액됐다. 이개호 정책위의장(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지역구에선 영광 추모공원 봉안당 신축(9억9400만원) 등 9개 사업에서 총 45억7200만원이 늘었다. 친명계 인사인 4선 정성호 의원(경기 양주)의 경우 양주 회암IC 연결나들목 지하차도 건설(10억원), 양주 석굴암 보수정비(2억2500만원) 사업에서 총 12억2500만원이 늘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소위에서 서삼석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송언석 의원. [연합] |
예산 심사를 담당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의 지역구 예산도 늘었다. 예결위원장인 재선의 서삼석 의원(전남 영암·무안·신안) 지역구에선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연장 사업 예산이 25억원 늘었고, 무안현경~해제국도건설 사업(10억원)이 신설되는 등 9개 사업에서 총 66억1500만원이 증액됐다. 여당 간사인 재선의 송언석 의원(경북 김천) 지역구는 문경~김천 철도 사업이 20억원 증액되는 등 5개 사업에서 총 50억6900만원이 늘었다. 야당 간사인 재선 강훈식 의원(충남 아산을)의 경우 하수관로 개량 사업 예산이 17억5000만원 늘었고, 아산 둔포 원도심 연결도로구축사업(10억원)이 신설되는 등 7개 사업에서 총 46억6600만원이 증액됐다.
다만 이들 사업에 대한 예산 증액 요구는 운영위·정보위를 제외한 15개 상임위 예산소위 및 예결위 심사 기록에 남아있다. 국회법상 근거도 없고, 기록조차 남지 않는 예결위 ‘소소위’ 밀실협상에서 이뤄진 쪽지 예산은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쪽지 예산이 될 정도로 돈이 남아도는 상황이 아닌 것”이라며 “억지스러운 예산을 (정부가) 다 추려냈다”고 말했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서삼석 국회 예결위원장과의 면담 사진. |
쪽지 예산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들어서는 ‘이건희 기증관(가칭)’ 건립 사업 예산(59억6100만원)이 사례다. 해당 사업은 소관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 예산소위 심사 과정에서 요청된 바 없으나 본회의를 통과한 최종 예산안에 포함됐다. 예결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심사자료에 기록이 남지 않았는데 최종안에 포함됐다면 쪽지 예산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는 종로 출마설이 나오는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사무총장은 예결위 소소위 협상이 이뤄지던 지난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2021년 당시 부지 확정을 발표한 황희 전 문체부 장관과 함께 서삼석 위원장을 만났다”며 “송현동 미술관 건립 예산을 꼭 확보해 달라고 당부드렸다”고 예산을 요구한 사실을 밝혔다. 이 사무총장은 예산안 본회의 통과 직후에도 “걱정이 많았는데 참 다행”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 사무총장 측 관계자는 “(이건희 기증관의 경우)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추진한 문화 국책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예산에도 반영되지 못하면 1년 간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감에 요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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