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국제 경제 석학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전 세계 경제가 분열되면서 무역이 더 이상 성장을 견인하지 못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중 갈등과 더불어 주요 7개국(G7)과 브릭스(BRICS) 간 충돌 등 경제 블록화가 심화하면 미국의 달러 패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 석학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도미닉 살바토레 포덤대 교수는 6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2024 전미경제학회(AEA) 연례 총회’에서 “우리는 점점 분열되는 세계를 보고 있다”면서 “세계무역은 다극화하고 있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중국에 비해 단기간의 우위를 유지할 수는 있겠으나 글로벌 성장은 둔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그 증가 속도가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두 배에 달했고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살바토레 교수는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후 글로벌 무역은 GDP와 같은 규모로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현재 글로벌 시장이 △미국과 그 동맹국 △비동맹 그룹(브라질·인도네시아 등)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3극화되고 있다고 진단한 후 “이는 미국에도 위험한 게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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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가 기업의 자유로운 해외투자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제임스 하인스 미시간대 교수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의 위협이 모든 종류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문제는 리쇼어링은 자국의 경제 기회를 높이지만 동시에 해외에서 경제활동을 축소시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셰카르 아이야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지정학적 쏠림 현상을 분석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고조된다면 FDI 역시 동일한 지정학적 블록에 집중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이 분열되고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 등의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미국의 달러화 패권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브릭스의 경제 규모는 1995년만 해도 세계 GDP의 16.9%에 불과했지만 약 28년이 지난 현재는 30%를 차지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브릭스에 공식 가입한 가운데 중국은 사우디에 최대 규모 정유 공장을 건설하는 등 밀월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컨설팅 업체인 콘퍼런스보드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데이나 피터슨은 “중국의 경우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상황이 가속화함에 따라 달러화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적극적”이라면서 “달러가 더 이상 왕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달러와 미국 국채의 수요에는 심각한 위험이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위험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펠레그리노 만프라 뉴욕시립대 교수도 “브릭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달러는 전 세계 거래의 60%를 차지하지만 그 이전 70% 수준이었던 데 비해 힘을 잃었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미국이 앞으로 닥칠 위기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특히 “대공황 이후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됐다”면서 “우리는 무역과 예산 적자가 큰 미국의 금융 혼란 가능성과 달러의 위상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제학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로 접어들고 세계 각국에서 전후 경제 재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으나 여기에도 다양한 변수가 있다고 진단했다. 라울 카루소 사크로쿠오레가톨릭대 교수는 “미국의 대선은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위상과 더불어 유럽의 정치·경제 지형을 바꿀 수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역시 미 대선 결과에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리 고로드니첸코 캘리포니아 UC버클리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을 위해 시행한 마셜플랜과 유사한 지원을 할 전담 기관이 필요하며 공적 자본은 물론 FDI가 대량으로 유입돼야 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의 경우 전후에도 안보 위험으로 인해 이 같은 투자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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