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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인의 반걸음 육아2] 나는 내가 저절로 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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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고등학교 교사 김혜인이 발달 지연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김혜인

[교사 김혜인] 아이가 운다. 아이가 울면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보통 18개월이 넘은 아이는 손을 뻗어 무언가를 요구할 줄 알지만 내 아이는 그렇지 않다. 돌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엄마’를 말하지 못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저 울 뿐이다. 그러면 기저귀를 확인했다가 먹을 것을 주었다가 노래를 불러 보았다가 장난감을 줘 봤다가 안아서 달랜다.

나는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언니와 오빠가 모두 70년대생이니, 국가 산아제한정책을 부모님은 가볍게 무시(인지 무지인지) 한 셈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임신 때의 일부터 시작하는 여러 에피소드를 줄줄 얘기하던 엄마는, 나에 대해서만큼은 “너는 저절로 컸다. 아이 많이 낳아 기르느라 고생했다고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주신 딸이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다섯째 아이의 임신 사실은 무척 당혹스럽고 힘들었지만 낳기로 결심한 뒤부터 얼마나 좋은 날들을 보냈는지, 내가 얼마나 순하고 잘 웃는 아이였는지, 그래서 어두운 집안 형편에 얼마나 환한 기쁨이 되었는지, 손 가는 일 없이 얼마나 모든 걸 스스로 하는 아이였는지 어릴 때부터 들어왔고, 그것은 내게 은근히 자부심이 되기도 했다. 나는 내가 정말 저절로 큰 줄 알았다.

나중에 내 아이를 돌보며 절감했다. 아기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게 아니다. 배고픈 것 같으면 먹여주어야 한다. 젖이든 분유든 주면 그냥 잘 먹는 게 아니었다. 제대로 빨지 못하고 잠들어버리거나 너무 먹어서 토할 수 있어 적정하게 잘 먹여주어야 했다. 졸리면 자연스레 잠드는 게 아니었다. 졸리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잠들기를 결정하는 건 여러 감정과 기능이 분화될 만큼 자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과 세상과 모든 불편함이 하나로 뭉쳐 있는 아기는 졸려도 스스로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잠투정을 잘 달래주며 재워야 했다.

나는 출산 후 두 달쯤 지난 뒤부터 아주 많이 힘들었다. 걱정이 많고 극도로 예민해졌다. 눈물을 쏟고 화를 냈다.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에 빠진 나를 매일 위로하던 엄마도 어느 날 슬픔에 젖어 당신이 내게 너무 해준 게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는 도대체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냐며 엄마를 원망하던 아이였다. 눈물이 났다. “엄마,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엄마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셨잖아요.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겠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이 세상에 살아남은 데에는 얼마나 많은 돌봄이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내가 갓난아기일 때, 분화되지 않은 고통으로 울 때 누군가 나를 돌보아 주었다.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옷을 입히고 병원에 데려갔다. 가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다정한 말로 달래며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그렇게 내 아이도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친절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아마도 인생 전체에서 가장 따뜻하고 무조건적인 호의를 받고 있겠다.

온종일 우는 아이를 달래며 애쓰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시어머니께서 측은하고 따뜻한 눈길로 말씀하셨다. “이 녀석이 커서 지 어미가 이렇게 애쓰며 키운 줄 알까.”

나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바로 대답했다. “아뇨, 저 혼자 큰 줄 알겠죠.”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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